감정의 모든 문제는 시간에서 비롯된다.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천착하던 주제가 시간인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게다. 우울은 과거와 단단히 묶여 있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고 되새김질하면 슬퍼진다. “결혼하고 시집살이 하느라 괴로웠어요.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면 행복했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과거 속을 헤매면 우울해진다. 불안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근심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과 지금은 갖고 있지만 사라지고 말 것을 두려워하면 불안해진다. 가슴이 조금만 답답해도 ‘심장마비가 오면 어쩌지. 이러다 갑자기 죽는 게 아닐까’라고 미래를 상상하면 불안해진다.
우리의 생각은 과거와 미래로 끊임없이 흩어지며, 현재와의 접속이 수시로 끊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중에 실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와 미래를 실재로 인식하면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상상 속의 시간을 현실처럼 느끼며 괴로워한다. 모든 심리치료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가르친다. 변하지 않는 행복의 속성도 현재에 집중하기다. 현재 경험에 몰입하면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진다. 더 깊은 삶의 의미에 닿을 수 있다. 몰입 경험을 더 자주, 더 많이 할수록 행복해진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향기로운 시간을 음미해야 한다”라고 맛깔나게 말했다.
시간을 ‘과거 대 현재’ ‘현재 대 미래’라는 대립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현재와 떼어낼 수 있는 과거는 없고, 현재에 뿌리 내리지 않은 미래는 없다.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는 그 어떤 경계도 없다. 단테는 “모든 시간이 곧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잊고 미래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에 매달려 지금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를 지우는 데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믿으면 행복과는 멀어진다. 과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미래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현재에 충실해야 가능하다. 과거는 깨끗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웅변하는 사람 모두, 지금 당장의 현실에 주의를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감성노트] 시간
입력 2017-04-07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