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유학 유감

입력 2017-04-08 00:00

L목사(39)는 다음 달 초 독일로 떠난다.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만 뒤처질 수는 없잖아. 다녀오면 인맥도 쌓일 거고, 어딘가에 길이 열리겠지.” 애써 밝은 척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불안함이 엿보였다.

서울 중구의 한 교회에서 6년간 부목사로 사역한 그는 지난해 유학을 결심했다. 이미 국내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굳이 ‘유학파’ 타이틀을 얻으려는 이유가 있다. 훗날 담임목사가 되는데 도움이 될까봐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다.

국내 중대형교회 중에는 해외 유학파 및 한인교회 중견 목사들을 청빙한 사례가 많다. 분당의 지구촌교회와 할렐루야교회, 서울 사랑의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유학파를 선호하는 경향은 여전한 듯하다. 오는 12월 담임목사 은퇴를 앞둔 경기도 P교회 청빙위 관계자는 “성도들 중에 고학력자들이 많다. 수준에 맞게 다양한 해외문화를 경험하고 외국어 구사도 가능한 유학파 인재를 중심으로 후임 목회자 후보를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학 관련 유학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 ‘신학의집 나모스’에는 매년 수십에서 수백명의 목회자들이 유학관련 문의를 한다. 부교역자들이 절대다수다. 답변은 현재 유학 중이거나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 한다. 다양한 나라 신학교의 교과과정과 교수에 대한 정보는 물론 교통, 물가 등 일상생활 관련 팁들도 공유된다.

선호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언어가 익숙하고, 한인 유학생이 많아 인맥 쌓기가 쉽기 때문이다.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인교회 수가 많아 파트타임 사역자로 일할 기회가 많다는 이유도 있다.

만만치 않은 학비와 생활비 탓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말 중도 귀국한 P목사(37)는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학위(DMin)를 취득하려면 최소 3년 이상 머물러야 하고 학비와 생활비(4인 가족 기준)로 최소 1억∼2억원이 필요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학업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목사로 일정기간(보통 5년 이상) 재직한 교회에서 퇴직 후 해외유학 장학금으로 2∼3년간 매달 200만∼300만원을 받는 경우,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힘들게 유학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목회에는 어떤 도움이 될까. 미국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K목사는 “영어로 발간되는 신학자료가 한글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공부한 목사들은 이를 더 폭넓게 목회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신학 흐름과 교회 문화의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 학위가 꼭 좋은 목사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유명대학 유학파 목사들 중에 성도들과의 소통 부재로 교회의 분열을 야기하거나 도덕적 타락으로 빈축을 산 이들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도 많은 목회자들, 특히 부교역자들이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 학벌과 인맥을 쌓는 것에 몰두해 정작 예수그리스도의 체휼(體恤)하심을 본받는 것에는 소홀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학위보다 신실함과 정직함, 공감능력을 갖춘 목회자를 선호하는 풍토가 교회에 자리하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일까.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