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62) 글로벌케어 회장은 20년 넘게 지구촌의 재난지역을 누비며 의료봉사의 기틀을 닦아온 국제개발 전문가이자 내과의사다. 1997년 국내 최초 국제의료구호기관 글로벌케어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2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회장으로 선출됐다. KCOC는 130개 국제개발 NGO의 협의체이다.
최근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글로벌케어 사무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글로벌케어는 80년대부터 국내외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기독의료인들이 중심이 돼 창립돼 올해 20주년을 맞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회장은 그동안 수많은 재난현장을 다녔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재난현장에서 적절하게 환자를 진료하는 그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94년 4월 7일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르완다 내전’이 일어났다. 종족 간 대학살로 최소 50만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현장이었다. 그는 13명의 의료팀을 이끌고 그해 10월 29일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고마 난민촌에 도착했다.
“유엔으로부터 1만2000여명이 수용된 촌도캠프를 위탁받아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영양식단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촌도캠프와 카탈레캠프에 난민들과 함께 교회를 세운 일이 기억에 선합니다.”
그는 당시 함께 일했던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인상 깊게 보며 한국에도 이와 같은 의료 NGO가 세워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한국인의 성실성과 정열은 긴급구호 활동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 후 독자적인 NGO 창립을 위해 한국누가회 회원들과 기도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3년 뒤 ‘한국판’ 국경없는 의사회로 불리는 글로벌케어를 출범시켰다.
글로벌케어는 창립 후 코소보 내전, 터키 지진 등 세계 각국의 재난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99년 3월 말 발생해 많은 사상자를 냈던 ‘코소보 사태’ 때 11명의 의료진을 이끌고 현장에 있었다.
“코소보평화안이 받아들여져 난민들이 기쁨의 귀향길에 올랐을 때 진료했던 현지인들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99년 8월 17일 터키 북서부를 강타한 규모 7.3의 강진으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는 피해지역인 얄로바시에서 긴급구호팀을 이끌며 2500여명의 부상자를 치료했다. 구호팀은 여진 공포가 계속되던 날 밤 아이를 출산하다 건물더미에 깔린 모자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응급구호 작업을 펼쳤다.
“호흡이 끊어질 듯한 산모와 아이에게 극적으로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응급처치를 해 살려냈어요. 지켜보던 터키인들과 각국 의료 NGO들이 탄성을 터뜨렸고 우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글로벌케어는 전국 150여개 회원 병원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인력 500여명과 일반 자원봉사자 1000여명이 가입해 하나님의 명령인 이웃 사랑과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 의료선교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성과를 보고 있다. 그는 모로코에서 모바일 보건을 이용한 결핵 관리를 성공적인 사례로 꼽았다.
“결핵 치료는 꾸준한 약 복용이 필수입니다. 모로코 살레 지역 결핵환자에게 스마트 약상자를 보급해 약을 꾸준히 복용토록 하고 지역 보건소에서는 환자들이 복약 여부를 온라인으로 관리합니다. 스마트 약상자는 일정시간이 되면 복용시간을 알려줘 환자의 복약률을 높여 결핵 치료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치료 성공률 95%, 복약률 98%로 150명이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요즘 그는 만나는 후배마다 말씀 묵상을 권한다. 세브란스병원 인턴시절부터 시작한 말씀 묵상의 인도로 지금까지 오게 됐기 때문이다. “기독의사들의 의료구호는 기독교적인 구속(救贖)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구호 행위로 복음을 함축했습니다. 많은 기독의료인이 봉사활동을 통해 세계의 이웃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길 바랍니다.”
현재 그는 온누리교회에 출석하고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글로벌케어 내과’를 운영하고 있다.
글=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박용준 글로벌케어 회장 “생·사 가르는 현장서 참된 의술은 믿음”
입력 2017-04-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