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임자 없는 돈, 아파트 관리비

입력 2017-04-07 05:00

경기도 수원의 A아파트는 골프장 등 입주민 운동시설을 민간 업체에 위탁해 관리토록 했다. 하지만 관리 업체는 운동시설 회비를 입주자대표회의 계좌로 송금하지 않았다. 대신 업체 계좌로 송금하거나 현금으로 받는 수법으로 3개월간 회비 1300만원을 횡령했다. 결국 이 업체 대표는 지난 2월 기소됐다. 충북 청주의 B아파트에선 관리사무소 경리직원이 5년 넘게 경비 청구서를 조작해 2억70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역시 지난 2월 기소됐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전국 9040개 아파트 단지(300가구 이상)에 대한 ‘2015 회계연도 외부 감사’ 결과 676개 단지(7.5%)에서 부적정 의견이 나왔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대비 11.9% 포인트 감소했지만 여전히 아파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아파트 관리비 부적정 사유로는 예·적금을 실제 잔액보다 적게 계상하거나 직원 퇴직급여충당금을 규정보다 부풀려 산정하는 유형이 23.2%로 가장 많았다. 아파트 노후화 등에 대비해 적립해야 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을 과도하게 책정하거나 줄이는 유형이 15.6%로 뒤를 이었다. 피트니스 등 운동시설 수익을 낮게 산정하거나 엘리베이터 사용료 등을 잘못 계산하는 사례도 12.7%나 됐다.

반면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입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금흐름표 누락’ 사례는 전년(34.5%) 대비 크게 감소한 12.5%를 기록했다. 부패척결추진단 관계자는 “입주민의 아파트 관리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의무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조사에서도 부적정 사례가 대거 확인됐다. 외부 감사 결과 등을 토대로 ‘요주의 단지’로 선정된 816개 단지 중 713개 단지(87.4%)에서 3435건의 비위 또는 부적정 사례가 적발됐다. 2015년 조사에서 429개 단지 중 312개 단지(72%)에서 1255건의 비위 사례가 확인된 것을 감안하면 조사 대상과 적발 건수가 대폭 증가했다.

부실감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패척결추진단이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함께 부실감사가 의심되는 3349개 아파트 단지 감사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절반이 넘는 1800개 단지에서 부실감사를 적발했다. 저가 입찰을 통해 여러 아파트 감사 업무를 수임하는 바람에 감사가 부실해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번 조사에선 회계사 한 명이 건당 최저 10만9000원을 받고 10개월간 156개 단지를 감사한 사례가 적발됐다. 이 회계사의 1개 단지 평균 감사일은 1.33일(영업일 기준)에 불과했고, 156개 단지 모두에서 부실감사가 적발됐다.

회계사 6명이 6개월간 192개 단지를 감사했지만 이 중 170개 단지에서 부실감사가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외부 감사 후 감사 조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감사를 진행하지 않은 회계사가 허위 날인한 경우도 있었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적발된 사례 중 정도가 심한 15개 감사인(회계법인, 감사반)과 회계사 65명은 따로 징계 조치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