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 앞은 목 쉴 듯 외치는 연설소리로 가득 찼다. 길가에 걸린 현수막에는 ‘5·18 유공자 금수저 귀족 특혜 공개하라’고 쓰여 있었다. 장충근 ROTC 애국동지회 전략기획본부장은 광주민주화운동을 5·18사태, 광주 폭동이라고 불렀다. “5·18사태 때 임산부와 여고생을 해친 일은 국군이 아니라 간첩이나 북한 특수군 소행”이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폭동을 진압해 이 나라가 적화되는 것을 막았다”고 소리 높였다.
극우 세력의 역사 뒤집기가 잇따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사실상 무산됐지만, 거리와 온라인에서 상식 밖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배후에 북한이 있으니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다. 친박(친박근혜) 단체 ‘대통령복권국민저항본부’ 회원들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주일여 뒤인 지난달 18일 박 전 대통령 삼성동 자택 앞에서 “탄핵 불복”을 외쳤다. 이들은 “이번 탄핵은 북한에서 탄핵 지령을 받은 사기 탄핵”이라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대통령을 복권하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법치를 강조하는 보수 세력이 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역설적인 모습”이라며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부정하며 민주주의에 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온라인에서도 역사 뒤집기,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있다. 지난 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유인물 ‘10% 가산점 받는 금수저 5·18 유공자가 누리는 귀족 대우’는 북한 특수군이 5·18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일으킨 478명이 북한 핵심층 인물이라는 것이다. 1980년 당시 신군부 세력이 유포한 주장으로, 극우논객 지만원(74)씨가 다시 들고 나왔다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내용과 유사하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탄핵 이후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극우세력이 급진적인 주장을 우기면서 정치적 입지를 되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 2일 발간한 회고록도 극우적인 주장에 불을 붙였다. 내란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회고록에서 “5·18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했다.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며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내란죄까지 부정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상황에서 우익 세력이 철지난 주장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 뒤집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북한 특수군 478명이 5·18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등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극우 세력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이미 역사적으로 합의된 사안을 흔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주환 손재호 이형민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곳곳서 고개드는 ‘극우의 추억’… 역사 뒤집기 왜?
입력 2017-04-0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