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유진룡 前 장관에 괘씸죄 적용 면직한 일 없다”

입력 2017-04-06 18:14 수정 2017-04-06 21:17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최현규 기자

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모습을 드려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두 사람 모두 수의(囚衣) 대신 구속 전 입었던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출석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 전 장관은 흰머리가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배지가 달려 있던 조 전 장관의 재킷에는 수형번호가 적혔다.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김 전 실장은 “지금은 무직”이라고 답했다. 조 전 장관도 “(직업이)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입을 모아 혐의를 부인했다. 김 전 실장 측은 “특검의 선입관과 편견을 꼭 검증해야 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김 전 실장은 최순실씨 국정농단에 관여됐을 거라는 추측에 따른 여론 재판과 정치적 표적 수사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정부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그걸 받지 못하면 이들은 예술 활동을 못하는 것인지, 이건 꼭 검증해야 할 선입관”이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한 여성이 “그게 왜 선입관이냐. 우리는 고통 받고 있다”고 소리쳐 소란이 일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저에 대해 깊은 오해가 쌓여 있었던 것 같다”고 입을 뗐다. 그는 “지난해 성탄절 직후 특검이 제 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철저히 수사해 의혹을 풀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제가 지금까지 보낸 시간과 자리를 생각했을 때 (국민 등이) 이렇게 오해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정무수석실 직원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당시 상관인 조 전 장관이 가담했다는 건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했다.

증인으로 나온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김 전 실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유 전 장관은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차별과 배제 행위는 분명히 있었다”며 “그 중심이었던 김 전 실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작은 목소리로 ‘관여하지 않았다. 전혀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걸 보며 대한민국 지도자로 자처했던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처음엔 김 전 실장이 대통령 뜻과 달리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문화계 차별 문제 등을 보고할 당시 듣고만 있던 대통령이 마지막에 ‘(김 전 실장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때 ‘대통령이 사실은 다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재판 말미에 입을 열었다. 그는 “유 전 장관에 ‘괘씸죄’를 적용해 면직한 일이 없다”며 “저는 노구(老軀)를 끌고 (청와대에) 봉사하러 들어갔을 뿐 어떤 사람을 자르라거나 특정 인사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