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한국의 가계부채 비중과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빚 부담이 소비를 억제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당국의 전방위적 가계부채 억제책으로 2분기에는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까지 대출 옥죄기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6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에 보고한 ‘가계부채 상황 점검’ 자료에서 2015년 말 기준 처분가능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9.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처분가능소득은 세금 국민연금 이자비용 등 고정지출 항목을 빼고 가계가 실제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OECD 전체 35개국 가운데 파악 가능한 25개국의 평균 비율은 129.2%이다. 한국이 OECD 국가 평균보다 가계의 빚 부담 정도가 40% 포인트 높은 것이다.
2010∼2015년 증감폭을 견주면 더 심각하다. 한국은 5년 새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1.4% 포인트나 증가해 스위스(26.7% 포인트)를 제외하곤 최고 수준이었다. 미국(-22.6% 포인트) 영국(-11.8% 포인트) 독일(-7.4% 포인트) 등 주요국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실시한 여파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한국은 2015년 말 기준 91.0%로 OECD 평균 70.4%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다. 명목 GDP는 우리나라가 실제 번 돈 전체를 의미한다. 실제 쓸 수 있는 돈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좀 더 정확한 부채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이고, 명목 GDP 대비는 보조로 쓰인다.
한은은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제약하고 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인용해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가구가 전체의 70%에 이르고 이 중 약 75%는 실제 소비 지출과 저축액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은은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확장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신용등급 우수 계층의 부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부채보유 가구의 자산이 아직은 부채보다 1.2배 많다고 설명했다.
대신 취약계층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한은은 지난해 100만원 벌어 40만원 이상 빚 갚는 데 쓰는 고위험 가구의 부채 규모가 62조원으로 1년 만에 15조원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한편 2분기에는 은행에 이어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됐다. 한은이 이날 199개 금융기관 여신총괄 책임자를 설문해 발표한 대출행태 조사 결과를 보면 상호금융은 2분기 대출태도지수가 -40으로 전망됐고, 저축은행은 -21, 생명보험사도 -24를 기록해 모두 사상 최악 수준을 보였다. 전망치가 마이너스(-)이면 대출심사를 강화해 돈을 회수하겠다는 의미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가계부채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4월 분양물량이 증가하면 가계대출이 확대될 수 있으므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소득 대비 가계 빚, 美 22.6%P 줄 때 韓 21.4%P 급등
입력 2017-04-07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