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기독교인 1979명 이름 찾는다

입력 2017-04-07 00:03
이치만 장신대 교수가 조선문제 잡찬 중 만세소요사건편에 나온 만세운동 참가자 현황을 그린 도표를 설명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이 자료에서 일본인 검사가 1919년 3월 6일 남강 이승훈에게 예수교인인지를 묻는 대목.

“이승훈. 당신은 예수교인입니까?” “그렇소. 난 예수교 장로입니다”

1919년 3월 6일 가와무라 시즈나가(河村 靜永) 검사는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강 이승훈을 조사하며 시작부터 종교를 물었다.

기미년 만세운동 직후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가담자들을 잡아들인 일본경찰과 헌병은 신속히 사건을 처리해 검찰로 송치했다. 2차 심문을 한 검사들은 모든 피의자들의 종교를 확인했다. 조선총독부가 3·1 만세운동이 종교인들에 의해 계획된 일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최근 공개된 일본 우방협회 전 발행인 곤도 겐이치가 1969년 펴낸 ‘고 자작 사카타니 요시로 박사 유집, 조선문제 잡찬 중 만세소요사건편’에는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인의 숫자가 기록돼 있다. 이 책은 이치만 장신대 역사신학 교수가 가지고 있던 자료였다. 사카타니 박사의 유집에는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일본 검찰에 송치된 조선인의 현황이 담겨있고 종교인이 몇 명 참여했는지를 종교와 성별로 분류해 뒀다.

이 책에는 만세운동 후 3개월 동안 검찰에 송치된 조선인의 수를 908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예수교도로 분류된 수는 1979명. 만세운동으로 검찰에 송치된 조선인의 21.7%가 기독교인들이었던 셈이었다.

이 교수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기미년 만세운동에 참여해 일본 검찰에 송치된 1979명의 명단을 전수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최근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삼일운동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우영수 목사)에서 처음 공개됐다. 기념사업위원회는 이 교수가 제안한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숫자로만 남아있는 신앙의 선배들을 추적하는 일은 단절된 기독교의 역사를 복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저항의 상징이었던 기독교가 현재의 기독교로 이어지지 못한 역사의 변곡점이 주요 교단들의 신사참배 결의였다”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신앙의 선배들의 이름을 찾아내는 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발굴하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의 이름을 찾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참고문헌만 해도 80권에 달한다. 순서는 이렇다.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있는 일제 37년 동안의 판결문에서 3·1 운동 관련 판결을 찾아낸 뒤 이를 일일이 같은 시기의 검찰 조서와 대조한다. 당시 검찰이 모든 피의자의 종교를 물어봤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기록된 기독교인의 이름은 1919년 3월 1일부터 헌병대와 경찰이 쓴 일일 보고서와 비교한다. 여기까지 조사가 진행되면 만세운동과 관련된 기독교인의 이름과 주소지가 걸러진다. 이들의 소속 교단을 파악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1919년 즈음 전국의 교회는 400개 남짓이었고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지가 구분돼 있었기 때문에 살던 곳만 알면 교단을 추정할 수 있다. 주소지가 평북 선천이면 장로교인이고 함남 원산이면 감리교인인 식이다.

이 작업은 숫자로만 남아있는 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는 게 삼일운동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의 설명이다. 우영수 위원장은 “이름을 찾는 일은 잊혔던 신앙 선배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면서 “묻혀있던 역사를 살려내 지금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바른 신앙의 길로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