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모세의 반란’은 없다

입력 2017-04-07 00:03 수정 2017-04-07 12:10

요단강 동안(東岸)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퇴장을 명하신다. 은퇴는 곧 그의 죽음을 의미했다. 120세지만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모세였다. 호세아(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젊은이들을 부리고 가나안을 정복할 노익장이 충분했다. 파라오의 유아학살에서 살아남아 공주의 아들로 거듭났던 히브리 노예의 아들. 장성하자 압제에 시달리는 동족을 구하려 반란을 도모했다. 광야의 도피로 끝나버린 하룻날 복수의 일인극이었다. 언변도 학술도 무용도 기상도 상실한 40년의 침잠이 그를 기다렸다.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을 더한’ 침묵의 수련기. 하나님이 그를 불렀다. “에고 에이미(나는 존재하는 나다)!”

하나님은 모세를 잘 쓰셨다. 그를 통해 파라오의 열 신들(gods)을 물리쳤고, 나일강의 재앙 퍼레이드를 연출했다. 홍해를 가르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고 반석의 샘이 터지게 했다. “너는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해 주리라 한 땅을 압제받는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열 하룻길에 불과한 길을 40년이나 맴돌게 하셨다. 노예근성! 세대가 교체돼야할 문제였다. 모세는 순종으로 광야의 교회를 이끌었다. 십계명과 율법, 손발 씻고 음식 가리는 일로부터 급기야 부부의 침실문제까지. 하나님과 그가 결정하지 않은 게 없었다.

모세의 퇴장엔 내력이 있다. 1월 미리암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했느냐”고 말했다가 죽음을 선고 받았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무시했다는 해설은 핵심이 아니다. 5월 대제사장이자 모세의 형 아론이 죽는다. 백성들은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들었다. 하나님은 말했다. “지팡이를 가지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라.” 모세 형제는 지팡이를 잡고 회중에게 외쳤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백성을 경멸하며 이제는 겸손이 아닌 군림(君臨)의 왕홀이 된 지팡이를 휘둘렀다.

물이 쏟아졌다. 권력의 마법처럼! ‘회중과 짐승이’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내가 택한 내 백성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모세가 아론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 대제사장의 가운을 벗기자 아론은 죽었다. 모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11월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교체를 명하신다. 모세는 선처를 호소했노라 고백한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모세를 비스가산 꼭대기에 세우신다. “자 보아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땅의 모든 주린 백성들에게 주리라 한 땅이다. 네가 그리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일생에 걸친 충성에 대한 보답이었다. 죽은 모세의 묘를 아는 자가 없다 했다. 왜 그럴까. 모세는 죽을 때 혼자였고(왜 아니랴!) 수행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끝나자 봄소식이 만발이다. 대통령 탄핵이후 세월호가 인양되자 시간은 대선 레일 위에 올라타 버렸다. 광야를 회고할 겨를도 없이 KTX처럼 휙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잊지 말자. 개혁은 반(反)개혁에 수반된다. 사회 전 분야에서 퇴장을 거부하는 모세의 반란 같은 기득권의 저항이 나타날 것이다.

광야의 모세에게 비견될 이 시대와 나라와 교회의 늙고 힘 있는 원로들에게 원망과 아쉬움과 욕망이 남아있을지라도 아름답고 깨끗한 퇴장을 요청하고 싶다. 특히 한국교회는 그 명성 회복을 위해서라면 세습으로 자식의 등에 업혀서까지 당신들의 천국을 탐하는 노욕(老慾)의 비루함 따위를 버려야 한다. 모세의 반란 같은 건 없다. 최후 설교의 대미를 모세는 이렇게 장식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 33:29).”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

약력=△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 문학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 △저서 ‘연민이 없다는 것’ ‘고뇌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