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이었던 4일 오후 3시 서울 반포한강공원. 따뜻한 기온에 봄 햇볕을 즐기려는 시민이 쏟아져 나왔다. 한강이 보이는 명당과 그늘진 큰 나무 밑에는 온통 돗자리가 깔려있었다. 공원 자전거대여소 직원은 “날이 풀리기 전에는 자전거 대여가 많아야 하루 20대였지만 요새는 날이 풀려 대여 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지난 주말엔 100대 이상이 나갔다”고 말했다.
한강 건너편 남산타워는 회색빛으로 흐리게 보였다. 이날 서울시내 미세먼지(PM10) 농도는 ㎥당 52∼94㎍으로 ‘보통’과 ‘나쁨’ 수준을 넘나들었다. 공원을 돌아다닌 지 10분도 되지 않아 목이 칼칼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마스크를 쓴 시민은 찾기 어려웠다. 1시간30분 동안 기자가 지켜봤지만 산책하거나 잔디에 앉은 시민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1명뿐이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 중 절반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미세먼지를 주의하라는 안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야외활동이 잦은 4월이 되면서 미세먼지 딜레마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세먼지 걱정은 크지만 따뜻한 봄 날씨에 나들이나 야외활동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4일 반려견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전모(27)씨는 “미세먼지가 ‘나쁨’인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이 이번 주 중 가장 따뜻하다고 해서 감안하고 나왔다”며 “마스크를 따로 챙기진 않았다”고 했다. 5일 비가 내리긴 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7일부터 다시 날이 맑아지면 언제 다시 미세먼지 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대규모 야외행사가 몰려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되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마라톤 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달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만 9개가 넘는다. 오는 9일에도 마라톤 대회가 예정돼 있지만 미세먼지 대책은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해당 대회 관계자는 “마스크를 따로 나눠주진 않는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대회를 미루거나 취소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미세먼지가 ㎥당 82㎍까지 기록한 날에도 예정돼 있던 마라톤 대회는 그대로 열렸다. ‘미세먼지 마시기 대회’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환경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걸음마 수준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면 시가 주관하는 야외행사의 경우 가능하면 실내행사로 대체하겠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하지만 발령요건이 까다로워 있으나마나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5일 요건을 완화하기도 했다. 서울시와 인천·경기도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50㎍을 넘고 다음 날까지 나쁨 수준(50㎍) 이상으로 예보될 경우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등을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위험에 둔감한 관공서 태도가 시민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여전히 미세먼지를 목이 칼칼하다는 정도, 시야를 흐리게 한다는 정도의 불편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람들이 담배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나들이나 마라톤대회 등 야외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박사는 “시간과 비용 등을 따져봤을 때 미세먼지 때문에 아예 대회를 취소하는 건 무리한 감이 있다”면서도 “지난 몇 년간 3, 4월에 미세먼지가 가장 심했던 걸 알면서도 이 기간에 대규모 행사를 잡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미세먼지가 심한 시기에는 지자체에서 야외행사 자제 기간을 설정하는 등 점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임주언 안규영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봄날 마라톤 대회는 ‘미세먼지 들이마시기 대회’
입력 2017-04-0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