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총 거수기 오명 기관들이 달라졌다

입력 2017-04-05 18:19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온 기관투자가들이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기금 등 기관들은 금융사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 등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비록 관철은 안 됐지만 투명경영을 위해 반대 의견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일보가 5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의결권정보 열람시스템과 한국거래소 전자공시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달 열린 신한금융지주·KB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은행·IBK기업은행의 정기 주총에서 기관들은 사외이사 선임과 보수 한도, 정관 변경 등의 안건에 반대 의견을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3일 열린 신한금융 주총에선 사외이사의 독립성 문제가 제기됐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주재성, 필립 에이브릴, 히라카와 유키 3명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 의견을 던졌다. 주 이사와 에이브릴 이사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 또는 법인의 특수관계인”이라고 반대 사유를 밝혔다. 주 이사는 신한금융과 자문계약을 맺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이며, 에이브릴 이사는 신한금융 2대 지주(지분율 3.5%)인 BNP파리바 소속 BNP파리바증권 일본 대표다. 히라카와 프리메르코리아·레벌리버 대표이사는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한 의무수행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사 보수 한도에도 제동을 걸었다. KB금융 주총에서 이사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장기성과연동형 주식보상 부여의 기준·방법이 불명확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달 24일 열린 우리은행 주총에선 오정식 전 KB캐피탈 대표가 반대 폭탄을 맞았다. 오 전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데 노르웨이국부펀드(NBIM)가 반대 의사를 밝혔고,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는 데는 NBIM과 네덜란드 APG자산운용,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반대했다.

지난달 31일 IBK기업은행 주총에선 정관 변경 안건과 이사·감사 보수 한도가 문제였다. ‘이익금의 처리’ 신설 조항 등이 담긴 정관 일부 변경 안건에 대해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이 반대 의견을 던졌다. 이사보수한도 승인과 감사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선 CPPIB, APG가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들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다른 기관이나 주주들의 찬성에 밀렸기 때문이다. 의결권 자문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수정 연구원은 “연기금은 다른 기관에 비해 반대 의견을 활발히 해 온 편이지만 다른 주주의 찬성 의견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며 “반대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던질 수 있는 건전한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