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송호근(61·사진) 서울대 교수가 소설가로 변신했다. 첫 장편 ‘강화도-심행일기’(나남출판사)를 낸 그가 5일 서울 종로구 신영기금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무관 신헌(1811∼1888)이 지은 ‘심행(沁行)일기’를 토대로 한 팩션이다.
심행일기는 신헌이 일본과 강화도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맺은 1876년(고종 13년) 2월 한 달간 벌어진 일을 기록한 글이다. 신헌은 쇄국의 가치를 고집하는 조선 조정의 대표가 돼 세계화의 시발점이 되는 협상에 나섰던 인물이다. 심행은 강화도의 별칭이다.
“왜 소설을 썼냐고요?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제 욕구를 촉발시켰다고나 할까요. 봉합된 과거가 만들어낼 미래는 어떨까. 지금과 같은 누추한 미래가 될 거라는 생각에….”
초고는 하루 10시간씩 매달려 두 달 만에 완성했다. 왜 서양세력이 밀려들기 시작한, 조선의 마지막 사회를 배경으로 썼을까. 그는 주인공 신헌에 대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전략적 완충’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봉건과 근대가 부딪치는 시대의 격랑 앞에 돌올하게 선 신헌을 통해 경계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 그는 이번 대선 주자 중에서는 신헌과 같은 완충적인 인물은 없는 것 같다고 말았다. 무엇보다 대선에서 남북문제라는 이슈가 소멸된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굳이 ‘전공’이 아닌 소설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는지 궁금했다. “21세기 한국이 직면한 국제적 압력과 내부 논쟁의 출발점이 1876년입니다. 이후 한국사회는 같은 구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140여년간 반복의 덫에 갇힌 것처럼 여전히 국제 문제가 생기면 이념으로만 대적하려고 합니다. 그걸 바꿀 수는 없을까 고민했고, 논리적인 논문보다는 소설적 장치가 더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송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강단에 섰다. 소설 발표는 처음이지만 습작은 많이 해왔다. 그는 “이제는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학계에서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개의치 않겠다”며 웃었다.
강단의 제자들에게도 이 소설을 권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이 의외로 시대적 고민의 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고민의 역사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그 해결책을 궁구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지 묻자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쓰겠다”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송호근 “140년 전 조규협상에 나선 신헌의 고민 통해 덫에 갇힌 사회에 문제 제기하고 싶었다”
입력 2017-04-05 1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