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후회 안 하려면 이번엔 제대로 뽑아야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뽑는 거죠?” “공약 꼼꼼히 비교하고, 토론회 보면서 자질을 따져봐야지.” 지난 대선 때 지인과 나눈 대화 중 한 토막. 지금 생각해보니 정답이 아니다. 두 눈 부릅뜨고 공약과 토론을 봤지만 변별은 쉽지 않았다. 당시 후보들은 하나같이 세대, 지역을 아우르는 통합을 강조했다. 시급한 현안으론 청년 일자리와 가계 빚을 꼽았다. 해법도 별 차이가 없었다. 길어야 두 시간 정도였던 TV토론 후 ‘누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평가도 나왔지만 마음에 둔 후보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답변도 캠프에서 준비한 대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투표일이 다가왔고,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대통령이 탄생했다. 결과론이지만 탄핵으로 조기 하차하고 구속 수사까지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현재를 보면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셈이다. 제대로 뽑지 못한 결과는 한 정치인의 추락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은 요즘 절감하고 있다. ‘수저계급론’으로 대표되는 빈부·세대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고, 탄핵을 놓고 광장은 둘로 쪼개졌다. 경제는 또 어떤가.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고, 가계 빚은 매일 2700억원 넘게 늘어 박근혜정부 1475일 동안 400조원이나 증가했다.
바야흐로 선택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도 끝나 본선 대진표도 윤곽을 드러냈다. 좋든 싫든 그 후보들 가운데 한 명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누가 다시 “어떻게 해야 제대로 뽑는 거죠”라고 묻는다면 이번엔 “질리도록 검증해야 한다”고 답하겠다. 공약, 비전 등 그럴 듯한 포장지만 보고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없다. 한 사람의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밖에 없다. 후보의 과거 행적과 재산형성뿐 아니라 ‘누가 그의 귀를 잡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선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 최측근이 누구인지를 궁금해했다. 또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 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 뭐가 있을까’라며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그 대가는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나라꼴이 일그러지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검증은 정치권과 언론만의 몫이 아니다. 유권자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광장에 모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주인 선언을 한 이상, 주인의식을 가지고 불량일꾼을 가려내기 위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하다. 가장 검증 없이 치러지는 대선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세밀하게 검증하기엔 대선까지 기간이 너무 짧다. 검증 의지도 바닥이다. 최근 만난 고위 공무원은 “국민의 70% 이상이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 또 그들 대부분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만 진정한 정권교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시대정신이자 순리라는 얘기다. 검증 시도 역시 ‘네거티브’라는 딱지만 붙이면 얼렁뚱땅 넘어가버릴 분위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의 태도 역시 검증 수용 의지를 의심케 한다. 아들 취업 특혜 의혹에 대한 질문에 “마! 고마해”라고 했다고 한다. 석연찮은 구석이 남지 않게 적극적으로 해명해도 모자랄 판에 가족 문제를 정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의 태도는 적절치 못하다. 물론 ‘아니면 말고’ 식의 음해성 폭로를 선거 전략이나 무기로 삼는 구태가 재연돼선 곤란하다. 그러나 뒤탈이 없기 위해서는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을 후보들과 지지자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장희] 혹독하게 검증하라
입력 2017-04-05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