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세월호 인양에 1020억, 돈 이상의 가치

입력 2017-04-06 05:02
상하이샐비지의 재킹 바지선 2척이 지난달 23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상에서 깊은 바닷속에 잠겨 있던 세월호를 인양하고 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는 반잠수식 선박에 올려진 뒤 지난 1일 목포신항에 접안했다. 뉴시스
‘1020억원’과 ‘상하이샐비지’. 최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온 단어다. 상하이샐비지는 3년간 수심 44m 해저에 잠들어 있던 세월호를 수면 위로 인양한 중국 기업이다. 1020억원은 정부가 이 회사에 인양 대가로 준 돈이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에 따른 지출 내역을 밝히면서 관심이 인양금액에 쏠린 것이다. 그동안 일부 국회의원과 보수단체들은 “국민 혈세로 천문학적 인양비용을 부담한다”며 세월호 인양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해수부의 발표 후 네티즌들은 “세금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쏟아냈다. 단순한 화폐 가치를 넘어 1020억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양, 날씨·기술·비용 모두 충족돼야 가능

“대부분 대형 선박 인양 사례는 벌크, 컨테이너 등 화물선이다. 인양 장비여건에 따라 2∼8조각으로 잘라내 인양한다. 선체의 중량, 특히 무게중심이 매우 불확실해 선체에 연결하는 와이어로 인양한다고 할 때 많은 위험요소가 있을 것이다.”

해수부가 김현권 의원실에 제출한 ‘세월호 선체처리 기술검토 최종 보고서’(2015년 작성)는 세월호 인양에 부정적이었다. 미인양 사례를 들며 대부분 수심이 깊거나 침몰 해역의 해상 상태가 열악해 기술적으로 위험 요소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인양을 하더라도 기간과 비용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들어간다고도 했다.

침몰한 배를 바다 위로 끌어올리는 데는 엄청난 기술과 시간, 비용이 든다. 2000년 이후 해외에서 발생한 7000t급 이상 선박의 침몰사례 15건 중 인양된 게 14건이지만 대부분 선체를 절단·분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된 인양 사례는 온전한 상태로 끌어올린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다. 11만4000t에 길이 290m의 거대한 유람선인 콩코르디아호는 2012년 1월 이탈리아 서쪽 티레니아해 질리오섬 인근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선장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 콩코르디아호는 질리오섬 해안선으로부터 1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을 통과하다가 좌초했다. 당시 승객과 승무원 4234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32명이 사망했다.

배의 연료 유출 등으로 심각한 해양오염을 초래한 데다 크루즈 여행객으로 먹고 사는 지역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제기되자 선사는 인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어 배를 똑바로 세운 뒤 수면에 띄우는 인양 방식을 택했다.

연안이라 수심이 얕은 데다 콩코르디아호는 옆으로 쓰러진 채 절반가량만 물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도 좌초한 지 2년6개월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인양됐다. 인양 비용으로 당초 예상보다 배 정도 많은 12억2000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1조3645억7000만원)가 들었다.

뉴질랜드 앞바다의 수심 56m 지점에 침몰한 컨테이너선 ‘레나’의 경우 선체 중앙부가 두 조각으로 쪼개져 인양이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비용은 3억5000만 달러 이상 들었고, 작업기간도 연장해야 했다.

비용과 시간 문제 때문에 아예 인양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2006년 2월 이집트의 여객선 ‘알 살람 보카치오 98’(1만1800t급)은 승객 1400여명을 태우고 이집트 사파가항으로 향하던 중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이 사고는 세월호 참사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1970년 이탈리아에서 건조된 이 배는 1991년에 설계를 무리하게 변경하면서 무게중심과 복원력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선사와 선주는 엔진에 이상이 있음을 알고도 출항 지시를 내렸다. 승객을 구해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구명보트에 올랐다. 배에 타고 있던 10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 배는 아직도 수심 800m의 깊은 바닷속에 있다.

1994년 스웨덴 연안의 발트해에서 가라앉은 여객선 에스토니아호(1만5556t)도 인양을 포기했다. 깊은 수심(84m)과 낮은 수온, 시신훼손 가능성이 인양을 막았다.

세월호도 최악의 인양 조건을 안고 있었다. 수심 44m에 조류는 초속 0.19∼1.27m나 됐다. 물속에서 시야는 20∼100㎝밖에 안 됐다. 세월호처럼 대형 선박을 온전한 상태로 인양한 사례도 거의 없었다.

청해진해운 등에 구상권 행사한다지만

사고 초기에 정부는 인양 비용을 포함해 피해보상과 수습비용으로 5368억원이 소요된다고 예측했다. 이후 비용은 추가됐다. 인양 비용도 초기 계약액 851억원에 65억원이 더해졌다.

인양비용 1020억원은 다른 선박 인양사례와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다만 적은 액수는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는 이들이 근거로 둔 것도 ‘혈세 낭비’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비지원금을 우선 집행한 뒤에 사고 원인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키로 했었다. 구상권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채무를 변제한 사람이 그 다른 사람에 대해 갖는 상환 청구권이다. 청구 대상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이 회사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다. 사망·실종자 위로금, 부상자 지원금과 치료비, 피해지역 복구비, 생계안정 자금 등 지원된 국비 전액을 청구해야 한다.

과거에도 정부는 예산으로 피해자 보상과 사고수습을 진행한 뒤 사고를 일으킨 기업이나 당사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했었다. 1995년 6월 발생한 삼풍백화점 사고 때 정부는 국비 5755억원을 집행한 뒤에 구상권을 행사해 3478억원을 받아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경우 정부의 구상권 청구가 쉽지 않다. 청해진해운은 부채비율 400%가 넘는 부실기업이다. 사실상 변제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을 모두 확보한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검찰에서 유 전 회장이 국내외로 빼돌렸다고 구속영장에 적시한 금액은 1300억원이었다.

그렇지만 정부의 예산 투입이 ‘낭비’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 70% 이상은 세월호 인양에 찬성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돈을 떠나 국가가 국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