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교회 24시] 새벽기도 뒤 비닐하우스 심방… 봄나물 자라듯이 신앙도 쑥쑥

입력 2017-04-05 00:01
선종철 화산 서부교회 목사(왼쪽)가 비닐하우스 심방 중 만난 김주현 장로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선종철 목사 제공
1992년 해남 등대교회를 세우던 당시 성도들과 기도처소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 모습.
“요즘엔 새벽기도회가 끝난 뒤 비닐하우스로 심방을 가지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밭으로 나가면 하얀색 비닐하우스들이 안개꽃처럼 저를 반겨줍니다.”

선종철(69) 전남 해남군 화산면 서부교회 목사는 하루 일과 중 오전 일정을 ‘집’에서의 기도로 가득 채운다. 새벽 3시 30분, 집에서 눈을 떠 기도로 시작하고 집같이 아늑한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한 뒤 비닐로 만들어진 집에서 성도들을 만나 기도한다. 선 목사는 “황토고구마의 주산지인 해남에선 4월이면 고구마 순이 황토를 뚫고 파릇파릇하게 솟아오른다”며 “부지런히 비닐하우스에서 하루를 시작한 성도들과 고구마 순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으면 신앙도 쑥쑥 자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 목사는 비닐하우스와 인연이 깊다. 1992년 첫 사역지였던 해남 땅끝마을에서 복음의 등대 같은 교회를 짓겠노라며 성도들과 기도하던 처소가 비닐하우스였다.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동기와 함께 해남을 찾았더랬지요. 마을에서 가장 신앙생활하기 힘든 곳을 물었더니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성도 7∼8명이 밥상 하나 두고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그날로 그곳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해남 등대교회를 세웠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시절 비닐하우스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녀요.(웃음)”

마흔을 넘어 느지막이 시작한 신학 공부였다. 선 목사는 “하나님의 응답을 피해 다니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더 어렵고 척박한 곳으로 보내시려는 것’이란 소명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고 회상했다. 20∼30대를 공군에서 보낸 그는 15년 군복무를 마치고 1985년 상사로 제대했다. 제대를 앞두고 목회에 대한 응답을 받았지만 성경 속 요나처럼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터를 잡으려고 떠났지만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왔다.

“신학공부가 하기 싫어 1986년부턴 택시 운전대를 잡았지요. 그런데 결국엔 응답을 피할 수 없더라고요. 어느새 제 택시를 몰고 총신대 신대원에 등교하고 있지 뭡니까.”

땅끝마을에서 시작한 목회는 완도, 보성을 거쳐 화산으로 이어졌다. 화산에서 목회한 지 15년 만에 선 목사는 목회의 마지막 해를 맞았다. 내년이면 은퇴다. 그는 “농사일이란 게 새벽별 보며 시작해 밤별 보며 끝날 정도로 고되다”면서 “그럼에도 매일 새벽을 깨우며 함께 기도해주는 성도들을 보는 게 서부교회 목회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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