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남준우] 성장보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입력 2017-04-04 19:03

최근 한국은행의 국민계정발표는 우리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000달러로 11년째 2만 달러 수준이며 경제성장률은 2011년 2.3%로 크게 낮아진 뒤 2%대 수준에 머물러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답습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대선 후보들에게 경제성장률 목표를 요구하며 성장을 기치로 내건 후보가 없다고 질책이다. 성장과 분배가 상치되지 않는다는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거세질 전망이며, 대선 후보들의 분배 공약에 대해 벌써 ‘성장 피로증’에 빠져 결실을 기대하는 조급성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시절 높은 성장률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다가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성장-분배 논쟁에서 보편-선별 복지 논쟁으로 전환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사건과 최근의 촛불집회는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해 주어야 하는 기본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낙수효과를 강조한 성장 우선주의와 성장에 매진한 결과 팍팍하며 불안한 현실밖에 남지 않았다는 성장 후유증의 논쟁이 이제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위한 사회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어드는 듯하다.

퇴직 이후에도 파트타임 근로를 통해 노동의 대가를 즐길 수 있는 노후, 출산휴가를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근무 분위기, 육아와 근로 다 병행 가능한 유연한 근로제도 활성화, 일류 대학 진학이 곧 출세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사회, 동일 노동을 제공하고도 취업 형태에 따른 차별이 없는 직장,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그 노력을 인정받아 창의성을 자유로이 발휘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욕구가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정형화된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유연하게 삶을 향유할 수도 있고 잠시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2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숨막히는 사회인가. 대안을 선택한 책임은 본인의 몫이나 어느 경우라도 그 선택이 존중받는다면 그 사회는 화합하고 배려하고 창의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미래 성장의 근원이며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세월호 사건과 최근의 촛불집회는 비단 우리에게 재난사고로부터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가다.

이 이슈들은 시간과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사회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시스템 정비와 사회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돼야 할 것이다. 인식의 변화란 난제이나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민도 수준으로 볼 때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에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도출한 일본의 경우를 보라. 만일 이러한 요구가 높은 경제성장과 어느 정도의 국민소득이 달성된 이후 가능한 논의라고 치부해버린다면 그런 시기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요원할 것이다.

대선 후보나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니,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진입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지난 대선의 747 혹은 474 같은 허망한 구호를 쫓기보다 이제부터라도 국가다운 국가 건설로부터 미래 경제성장의 근원을 찾고 인간적인 기본을 위한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만 선진국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회적 인식도 선진국 수준으로 같이 전환해야 할 것이다.

남준우(서강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