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16> 중국 팬더링

입력 2017-04-04 19:04
‘그레이트 월’ 포스터

대국연(大國然)하는 중국의 자존망대함이 뚝뚝 묻어나는 영화를 봤다. ‘그레이트 월(장예모, 2016)’. 만리장성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다. 이 만리장성이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임은 역사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영화는 이 북방민족들을 흉측한 식인 괴물로 만들어놓았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중화주의적 오만에 할리우드가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 눈치보기, 나아가 아부하기(pandering)다.

일부에서는 영웅 남자주인공역을 미국의 톱스타 매트 데이먼이 맡은 것을 두고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네, ‘백인 구세주 콤플렉스’네 하는 말들이 나온다. 그러나 버라이어티지의 아시아 영화 수석비평기자인 매기 리의 분석은 다르다. “데이먼은 결코 화이트워싱의 예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진행되면서 원래 돈밖에 모르는 용병이었던 데이먼은 용기와 자기희생, 규율과 창의성 등 중국적인 가치들을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즉 막돼먹은 서구의 미개인이 중국에 감화돼 교양과 인격을 갖춘 ‘아(亞)중국인’으로 성장해간다는 얘기다. 그것 참.

그러다보니 중국을 중국답게 객관적으로, 때로는 편견을 섞어 다소 경멸적으로 그렸던 옛날 할리우드 영화들이 생각났다.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하고 스티브 매퀸이 주연한 ‘포함 산 파블로(1966)’. 1920년대 양자강을 무대로 미국 군함 산 파블로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중국인은 야만적인 농민과 쿨리로 그려진다. 아주 옛날 것으로는 펄 벅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대지(시드니 프랭클린, 1937)’가 있다. 가난한 농부 왕룽 일가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인 이 영화는 화이트워싱의 원조격이다. 남녀 주인공인 중국인 농부 왕룽과 아내 오란을 각각 백인 배우 폴 무니와 루이제 라이너가 연기했으니까.

사족. 화이트워싱에서 팬더링까지 할리우드의 대중 인식은 크게 달라졌지만 안 변한 것도 있다. 중국 여인의 이름은 십중팔구는 메이 린, 혹은 메이 링이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