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세상사는 동안 성공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행복하길 원하지만 불행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승리하길 원하지만 패배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진짜 문제는 불행과 실패 패배에 있지 않고 거기에 파묻혀 다시 일어서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성공한 사람치고 이 세 가지를 겪지 않은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의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인처럼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오뚝이라는 장난감이 있습니다. 집어던져도, 발로 차도, 밀어도 흔들거리다가 다시 일어섭니다. 밑에 균형을 잡아주는 무거운 물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이 내면의 균형을 잡아주니 어떤 환란이 닥쳐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가 환란으로 넘어질 때 잡아 일으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또 이사야 41장 13절에서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7장 4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치 말라”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에서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은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19절에서 지혜자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실패했을 때 고통스럽고 괴롭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우리를 괴롭히는 게 바로 불의하게 사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며 잘될 때입니다. 화도 나고 분통도 터집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못하는 내가 바보지’ 이런 생각에 빠져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떻게 하든 잘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9∼20절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불의를 행하는 사람이 잘된다고 해서 속상해하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겁니다. 악인의 등불은 언젠가는 꺼지지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원망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두려워 말고 낙심치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함으로 다시 일어섭시다.
유선모 고양 원당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다시 일어서는 신앙
입력 2017-04-04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