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를 계기로 촉발된 4·19혁명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대중적 열망의 분출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좌절됐다. 한국사회를 민주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닫혀버린 셈이다. 많은 지식인들은 좌절했고 한편으론 막연한 기대와 동요, 불안과 체념의 한가운데서 서성이고 있었다.
최인훈의 장편소설 ‘회색인’(1964)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발표됐다. 그의 첫 장편인 ‘광장’(1960)이 발표되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천양지차인 셈이다. 그때 최인훈은 ‘광장’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세아적 전제(專制)의 의자(椅子)를 타고 앉아서 민중(民衆)에겐 서구적 자유(自由)의 풍문만 들려 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共和國)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광장’을 가득 채웠던 저 뜨거운 흥분과 열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자유는 질식당했고 보람은 배반당했다. 작가를 사로잡은 것은 혁명이 좌절된 후의 회의와 절망이었다. ‘회색인’에는 그러한 작가의 심경과 갈 길에 대한 모색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회색인’은 ‘광장’의 명성에 가려 ‘광장’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은 ‘광장’보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소설이다. ‘광장’에 나타나는 현실 인식의 단순함이나 서툰 관념의 과장이 상당 부분 극복되었고 한국의 현실에 대해 보다 폭 넓고 깊은 사유가 펼쳐진다.
그런데 소설의 제목이 왜 ‘회색인’인가? 일찍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건 오직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이라네.” 최인훈에게 4·19혁명이 약동하는 푸른 생명이었다면, 그 모든 것이 스러지고 난 지금 남은 것은 잿빛뿐이다. 그리고 그 잿빛의 시간은 회의와 좌절이 지배하는 황혼의 시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시간은 냉철한 이성이 활동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회색인’은 회의와 좌절에 사로잡힌 무력한 자아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거대한 혼돈과 절망을 냉철한 이성으로 파헤쳐나간 끈질긴 탐구의 기록이다.
작품의 배경은 1958년 가을에서 1959년 여름까지다. 4·19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인 셈이다. 4·19혁명 직전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은 혁명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석하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다. 한국사회에서 혁명은 과연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혁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인훈이 ‘회색인’의 중심에서 묻고 있는 물음은 이런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독고준과 친구인 김학,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들 사이에 펼쳐지는 정치 토론과 그것을 매개로 촉발되는 독고준의 상념을 큰 축으로 펼쳐진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혁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주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독고준은 혁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온갖 적폐를 하나하나 지목하면서 치열한 비판적 논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소설의 다른 한 축에서는 북한에서 월남하기 전 독고준의 유년기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고독한 정신의 풍경이 현란하게 그려진다.
소설에서 독고준과 김학, 그리고 그 친구들의 모임인 ‘갇힌 세대’ 동인들이 벌이는 토론의 주제는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절망적인 감옥 안에 갇혀 있다는 자의식이다. 혁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한국의 열악하고 후진적인 조건과 잠자는 국민들의 의식은 혁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독고준은 이들 대학생들의 토론의 풍경을 이렇게 요약한다.
혁명. 피. 역사. 정치. 자유. 그런 낱말들이 그들의 자리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으나, 그것들이 장미꽃 저녁노을 사랑 모험 등산 같은 말과 얼마나 다른지는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무거운 낱말들-혁명 피 역사 정치 자유와 같은 사실의 책임을 질 만한 실제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언어뿐이었다. ‘사실’에 영향을 주고, ‘밖’을 움직이는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제 그림자를 쫓고 제 목소리가 되돌아온 메아리를 되씹는 수인(囚人)의 언어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들이 몸부림치면 칠수록 현실은 더욱 멀어 보였다.
혁명과 자유를 책임질 힘을 갖지 못한 무력한 언어의 한계. 실제 현실에서 대학생들이 주도했던 4·19혁명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물리적 힘에 의해 좌절되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작가는 혁명 이전 대학생들의 토론에서 거꾸로 그들이 주도한 4·19혁명의 한계를 이런 방식으로 환기하고 있었다. 독고준의 입장은 분명하다.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무슨 일을 해보려 해도 다 절벽인 사회”이고 그래서 “한두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대”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 풍토는 나침반과 시계가 없는 배” 같은 것이어서, “참으로 더러운 시대 못난 지역의 주민이 우리다.” 또 그는 말한다. “이 땅은 구조할 수 없는 땅이야. 한국. 세계의 고아. 버림받은 종족. 동양의 유태인.”
그래서 어쩌잔 말이냐는 김학의 물음에 독고준은 “사랑과 시간”만이 대안이라고 답한다. 회의와 권태의 의자에 주저앉아 오직 유일한 구원이 되어줄 ‘사랑’을 기다리자는 것이 독고준의 주장이고 그것이 또 작가의 생각이다. 이는 물론 당시 한국사회의 후진성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깊은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자학적이고 체념적인 비관이 아니냐는 의문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최인훈이 지키고자 했던 최후의 보루가 다름 아닌 개인의 가치와 정신의 자유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열악한 현실을 견디고 초월할 수 있게 하는 힘이며 ‘사랑과 시간’은 바로 그것의 상징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구원으로서의 사랑은 ‘광장’에서부터 일관된 최인훈의 문학적 지향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현실과 유리된 상상 속의 주관적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럼으로써 옹호되는 자아란 자기 안에 갇혀 타자와의 연대를 배제하는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닐 것인가?
그런 의문도 뒤따르지만, 소설에 따르면 ‘에고’와 ‘사랑’에 대한 독고준의 그런 집착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는 북한 W시에서 보낸 유년기를 회상한다. 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반동적 가족 성분’의 낙인이 찍힌 어린 독고준은 “망명인의 우울과 권태” 속에 잠겨 책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은 현실과는 거리를 둔 “거꾸로 된 세계”였으며 그를 괴롭히는 현실을 상상 속에서 지배할 수 있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한 쪽에 ‘책’이 있었다면, 또 한 쪽엔 ‘여자’가 있었다. 그는 W시에서 폭격을 만나 한 여자의 손에 이끌려 방공호로 숨는데, 그곳에서 그 여자의 품에 안겨 최초의 성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뺨에 와 닿는 뜨거운 뺨을 느꼈다. 준은 놀라움과 흥분으로 숨이 막혔다. 살냄새.” ‘회색인’에서 이 강렬한 성적 체험은 되찾아야만 하는 구원의 상징으로 반복적으로 환기된다. 작가에 따르면 혁명이 불가능한 이 땅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의 망명뿐이다. 이때 ‘책’과 ‘여자’는 독고준이 선택하는 망명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암시한다. 그 둘은 ‘에고’와 ‘사랑’의 상징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신의 망명을 택한 독고준이 그런 자신을 드라큘라에 비유한다는 사실이다. 최인훈이 새롭게 해석한 드라큘라는 독특하다. 그에 따르면 드라큘라는 신(神)에게 추방된 이단의 토착신(土着神)이자 반역자이고, 세상의 질서를 거부하는 고독한 혁명가다. 또한 드라큘라는 대답 없는 신을 대신해 스스로 신이 되어 ‘나’ 자신을 증명하기로 결심한 고독한 독서가이기도 하다. ‘회색인’에서 “내가 드라큘라”라고 말하는 독고준은 가망 없이 타락한 한국적 현실과 맞서는 망명한 정신의 반역자로 그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비유컨대 현실에서 추방된 고독한 드라큘라의 정신의 모험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혁명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최인훈은 독고준의 입을 빌려 그렇다고 말하지만, 김학과 황선생의 대화를 통해 그에 대한 반박 또한 잊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언뜻 독고준의 자아의 드라마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다른 한편 여러 의견과 목소리가 교차하고 맞물리는 대화적 소설이기도 하다. 김학은 말한다. “혁명이 가능했던 상황이란 건 없었어. 혁명은 그 불가능을 의지로 이겨내는 거야.”
중요한 것은 혁명이 가능한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개의 경우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고 숙고하는 일이말로 ‘회색인’을 가능케 한 동력이며 지금 우리가 이 소설을 읽게 하는 힘이다.
<문학평론가 김영찬>
최인훈은 분단시대 한국사회 정신·문화 탐구… ‘전후 최대의 작가’ 평가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원산고등학교 재학 중에 6·25가 발발했고 그해 12월에 월남해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58년 군에 입대한 후 59년 ‘자유문학’에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60년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첫 장편 ‘광장’을 발표한 후 ‘회색인’(1964) ‘서유기’(1966)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2) ‘태풍’(1973) 등의 장편과 ‘구운몽’(1962) ‘열하일기’(1962) ‘웃음소리’(1966) 등의 중·단편, ‘크리스마스 캐럴’(1966) ‘총독의 소리’(1967∼1976) 등의 연작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전후 한국 대표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소설을 통해 분단시대 한국사회의 정신과 문화, 정치와 예술 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던 그는 1970년대에 들어서는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희곡 창작에 몰두한다. 이후 10여 년의 휴지기를 거친 후 1994년에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화두’를 발간한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한국인의 정신구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과 글쓰기의 존재방식 등을 현란한 관념을 통해 해부하는 것이 그의 소설의 전체적인 특징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 소설’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김윤식과 김현이 ‘한국소설사’에서 최인훈을 ‘전후 최대의 작가’로 부를 만큼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사의 독보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불가능한 혁명과 고독한 드라큘라
입력 2017-04-04 20:34 수정 2017-04-04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