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3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2박3일에 걸친 TK(대구·경북)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보수의 심장에 가서 보수를 흔들어 깨우겠다”며 5시간 넘게 시장을 돌며 민심을 다독이는 데 공을 들였다. 대다수 상인들은 유 후보를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유 후보 면전에서 “배신자는 가라”고 쏘아붙였다. 유 후보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비난하는 사람들이 편을 나눠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유 후보는 오전 11시쯤 서문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입구에 지지자 300여명이 나와 ‘유승민 대통령’을 외쳤다. 유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정치를 하면서 늘 당당하고 떳떳한 보수의 적자라고 믿어 왔다”며 “‘진박’ 때문에 무너진 대구·경북의 자존심을 유승민이 지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선 후보로서 신고식 겸 본선 출정식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 후보는 상가를 구석구석 다녔다. 상인들은 유 후보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들며 지지를 보냈다. 장보러 나온 김모(72)씨는 “유승민만큼 흠 없는 사람도 없다”고 치켜세웠다. 밑반찬을 파는 박모(81)씨는 “마음으로는 찍어주고 싶은데…”라고 말을 아꼈다. 유 후보와 손을 맞잡은 시민들 중엔 돌아서서 “대구를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오노”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도 있었다. 유 후보는 시장 안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했다.
오후 들어 시장 분위기가 격앙됐다. 동산상가 2층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50, 60대 여성 대여섯명이 유 후보가 지나갈 때마다 “배신자”라고 목청을 높였다. 최모(68)씨는 “박 전 대통령 옆에서 실컷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대통령을 탄핵한 것도 모자라 구속까지 시켰다”고 격분했다. “대통령을 돌려 달라” “탄핵 무효”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서문시장 4지구 입구에선 한 여성이 유 후보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인근 가게 주인과 길 가던 주민들이 듣다못해 “말은 똑바로 하이소. 배신은 박근혜가 한 거 아닌교”라고 따지다 시비가 붙었다. 한 남성이 “다 같은 대구 사람 아닌교. 왜 우리끼리 싸웁니까”라고 중재해 마무리됐다. 유 후보와 떨어져 선거 유세를 돌던 김무성 선거대책위원장과 정운천 의원은 물세례를 받았다.
유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4·13총선에서 공천 학살을 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도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대구에서 늘 겪는 일이라 특별히 새로운 건 없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유 후보는 화재지구대책위원회 간담회까지 마치고 오후 4시쯤 시장을 떠났다.
4일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대구·경북 선대위 발족식에 참석한 뒤 서문시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보수 적통 경쟁이 불붙는 모습이다. 유 후보는 홍 지사가 스스로 ‘TK 적자’라고 주장한 데 대해 “대구·경북 분들이 그렇게 부끄러운 아들을 둔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단일화는 후보들이 안 해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해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대구=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배신자는 가라”… 유승민 보수심장서 진땀
입력 2017-04-03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