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종진] 기억 단절 심화하는 日 교과서

입력 2017-04-03 19:22

일본 문부과학성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고 이어서 초중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우리 영토주권을 침해하는 기술이 지리, 역사, 공민 과목으로 확대되었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서도 2015년 말 한·일 합의 정신에 입각해 군의 관여와 정부 책임 인정보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강조한 것은 문제이다. 상세한 내용 확인이 필요하지만 일본 사회의 기억의 단절을 유도하고 역사인식의 차이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교과서 검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일본 인구 가운데 전쟁을 체험한 세대는 이미 70대 이상이 되었다.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세대가 대다수이다. 가르치지 않고 전달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체험하지 못한 과거를 알 길이 없다. 과거 체험과 기억을 사회적으로 계승·극복하기 위해서 역사 교육과 교과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문부성의 교육정책과 교과서 검정을 보면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이 후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에서는 패전 후 ‘평화헌법’에 이어 기본인권과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기본법이 제정돼 평화와 민주 교육이 추진됐다. 1965년부터 97년까지 약 32년간 진행된 ‘이에나가(家永) 교과서 소송’은 과거 침략성을 인정하는 기술에 대한 교과서 검정의 부당성에 대한 소송이었다. 이러한 교과서 소송과 역사연구의 축적으로 이른바 ‘아시아 해방’이나 ‘자위’를 내세워 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인식을 극복하고 가해 책임과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립돼 왔다. 93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고노(河野) 담화, 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의식을 가진다는 역사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반발이 거세졌다. 이들이 지지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직접 검정 교과서를 발간해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06년 1차 아베정권 아래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의 60여년 만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2012년 말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정권은 교육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교과용도서 검정규정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을 개정함으로써 정부 방침을 교과서에 기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른바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교과서 공격’이다. 교과서 검정·채택 과정에서의 외부 압력과 이에 따른 교과서 기술의 위축은 역사 교육과 교과서 기술에서 기존의 침략성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역사인식을 배제시키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교과서 공격은 근대 제국주의 식민통치국가로서의 일본의 침략성과 가해성을 인정하는 역사인식에 대한 반작용의 하나이다. 과거에 침략성을 합리화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관료의 망언과 뒤이은 사죄 발언은 있었다. 최근에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사죄가 진정한 반성의 결과가 아니고 자신들의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 내에 왜곡된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견해를 교과서에 기술하게 하는 것은 결국 획일화된 역사관을 확산시키게 된다. 역사인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보다 과거사를 직시하고 그간에 축적된 연구와 자료에서 밝혀진 것을 그대로 교과서에 기술해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역사현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