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시민사회로 바뀌어가는 시대에 게릴라는 시효가 다했다고 봐요.”
‘문화 게릴라’로 불리던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65)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오는 16일 문을 닫는 게릴라극장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3일 연희단거리패의 새로운 대학로 근거지인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1년전 극단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게릴라로 다시 돌아가 싸우겠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의 뿌리가 뽑히면서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이분법적인 좌우 논리를 극복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광화문광장을 보면서 전투적인 아방가르드를 지향해온 연극운동도 이제 다양해져야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피력했다.
2004년 서울 동숭동에 처음 문을 연 뒤 2006년 혜화동으로 옮긴 게릴라극장은 부산에 근거를 둔 연희단거리패의 서울 기지였다. 극단 자체공연 외에 여러 기획을 통해 젊은 극단들에게 기회를 주며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것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게릴라극장과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공적 지원은 전부 끊겼다.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극단은 게릴라극장을 매각하고 일부 단원의 숙식도 겸할 수 있는 새로운 소극장인 30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그는 “나는 기본적으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회색분자다. 기본적인 성향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지식인으로서 선택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정의의 편에 서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 후보가 고등학교 친구여서가 아니라 군사독재와 싸운 빈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지 연설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퇴임 이후 문화예술에 대한 억압과 검열이 몰아닥쳤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야만적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블랙텐트’ 극장에서 그는 세월호와 관련된 연극 ‘씻금’을 올렸다. 30∼40대 젊은 연극인들이 주도한 블랙텐트 극장에서 최고령 연출가였다. 지식인은 시대의 전환점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그를 나서게 만들었다.
그는 “젊은 연극인들이 시대의 변혁을 이끄는 주체로 나선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연극은 제의적인 기원부터 정치적이었고, 광화문 블랙텐트는 연극의 정치성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 감독은 “연극인이 시대를 외면하면 안 되지만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하는 것엔 반대다. 연극쟁이로서 연극 안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자본과 대중문화를 떠받드는 세속주의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싸울 채비를 하고 있다. 30스튜디오에 이어 내달 13일 부산 외곽인 기장군 일광역 인근에 가마골 소극장을 다시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마골 소극장도 30스튜디오처럼 배우들의 숙식을 겸할 수 있다.
그는 “자본 논리에 지배되지 않으면서 연극성과 인문주의를 지키려고 한다. 30스튜디오와 가마골 소극장은 연극의 최후 아지트로서 자생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극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 “게릴라 시대는 끝나… 연극 운동도 다양해져야”
입력 2017-04-0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