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때마침의 유혹

입력 2017-04-03 00:00

이방의 큰 성읍이며 적국이었던 니느웨를 향한 회개의 명령을 거부한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가려 합니다. 그때 ‘때마침’ 욥바에서 그를 위한 배가 준비됐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가고 있는 요나에게 ‘때마침’ 너무나도 알맞게 배가 준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도망하던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많은 신앙인들에게 ‘(때)마침’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적절한 인도하심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 여겨져 왔습니다. 특히 삶의 자리에서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라고 너무 쉽게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나에게 적용된 ‘때마침’이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의 속사람이 사람 중심이며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어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보다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이 땅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합리화시켜주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피하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많이 우리를 유혹하는 단어가 ‘때마침’입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기로 한 순간부터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믿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그에게 ‘때마침’ 모든 것이 준비됐습니다. ‘때마침’이란 말은 하나님도 이렇게 하길 원하셨을 거라고 그럴듯하게 요나를 속였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과 나 중심의 삶이 절묘하게 뒤바뀌는 단어였죠.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완벽히 준비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려가는 상황 속에서 요나는 ‘때마침’이라는 단어에 유혹됐습니다. 그에게 거짓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가끔 우리는 문제를 위해 노력하다가 마음이 편해지면 그것이 하나님의 평안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이 ‘때마침’의 유혹인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허락된 평안인지 말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이라는 말은 개역한글판 성경에만 기록돼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는 순간 자기 합리화를 통해 거짓 평안을 만난 모습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요나의 자기합리화는 바다에 빠지면서 부서졌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회들과 준비된 일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행복한 일들이 모두 ‘때마침’의 유혹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잘 풀려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있는 마음의 욕심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합리화의 유혹에 빠져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삶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쉽게 숨어버리도록 만듭니다. 바쁜 일상이 그렇고 즐겁고 행복한 나 중심의 삶이 그렇습니다. 삶에 깊숙이 빠져들면 ‘때마침’의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유혹을 벗어난 요나의 회복은, 하나님을 다시 그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이뤄집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듯, 우리 삶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을 다른 어떤 이유로도 바꾸지 마십시오.

장기원 목사(일본 높은뜻 오차노미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