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27세에 농가교회 개척한 이희진 목사

입력 2017-04-03 00:00 수정 2017-04-03 20:12
이희진 빛마을교회 목사(뒤쪽 체크무늬 상의)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2일 경북 영주 문수면 승문리 교회 예배당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뮤지컬 공연으로 복음을 전하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0년 5월, 감리교신학대 신학대학원을 갓 졸업한 27세 여자 전도사가 경북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첫발을 내디뎠다. ‘주님, 유교와 불교 문화가 강한 이곳을 시작으로 농촌마을이 회복되게 하소서. 그것이 모여 건강한 나라 되게 하옵소서.’ 그의 기도제목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 15만원짜리 농가주택을 얻어 빛마을교회 간판을 붙였다.

어린 여 전도사의 출현을 두고 주위에선 ‘목사안수를 받는 데 필요한 경력을 쌓기 위해 내려왔다’ ‘어린 이단이 동네에 자리 잡았다’고 수군댔다.

“햇병아리 여 전도사의 출현에 지역 목회자는 물론 동네 어르신들도 황당해 했어요. 농번기 새파랗게 어린 여자아이가 주보를 들고 다니며 예수를 외치니 가부장 문화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뭐라고 했겠어요. 투명인간 취급당했죠.”

7년 전 교회개척 이야기를 꺼낸 이희진(34·사진) 목사는 덧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성도가 없으니 7개월 넘게 혼자 예배를 드렸다. 개척 1년 뒤 농촌 단기선교를 왔던 한 자매가 이 목사의 목회철학에 감동을 받고 공동체 식구가 됐다. 여자 청년 2명이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니 ‘사이비가 세력을 키웠다’는 소문이 퍼졌다. 길을 가는 어르신이 있으면 붙잡고 축복기도부터 했다. 개척 2년 만에 성도가 17명으로 불어났다.

2012년 어느 날이었다. “월세를 2배 올리겠소. 못 내면 나가쇼.” 집주인의 갑작스런 요구에 빛마을교회는 길바닥에 나앉았다. 어린 여 전도사는 탄식에 가까운 기도를 했다. 그러나 의외의 응답이 왔다. “더 깊은 데로 가라.”

수소문 끝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던 흉가로 교회를 이전했다. 사방에 들러붙은 닭똥을 걷어내고 도배를 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데다 문틈으로 칼바람이 불었다. 여름엔 벌레가 우글거렸다.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동네 어르신들이 물었다. “다 쓰러져가는 저게 교회야?”

가부장적 문화에 젖어있는 남성들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이 목사는 각 가정을 찾아가 꾸준히 예배를 드렸다. 단기선교팀과 마을잔치를 열고 이·미용과 발마사지 한방진료 문화사역을 펼쳤다. 3년 정도 지나니 이 목사가 나타나면 어르신들이 화투판을 접기 시작했다. “이 목사, 어여 예배하고 가라고. 고스톱 치게.”

감신대에서 만난 신학생들이 그의 목회비전에 공감해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을 통해 심신이 피폐해져 있던 청년들이 알음알음 공동체로 찾아왔다. 알코올·게임 중독 등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질병이 치유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목사는 “현대사회에서 개별화·파편화된 개인들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신의 실체를 봤기 때문”이라면서 “건강한 영성, 깊고 폭넓은 영성을 꿈꾼다면 노동과 살림훈련을 통해 내면의 의식을 깨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의 이야기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2012년 12월 수도권 한 목회자가 자신의 은퇴선물을 포기하고 1억원을 쾌척했다. 2013년 8월 문수면 승문리에 115㎡(35평)짜리 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빛마을교회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생활 영성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다. 오전 5시 기상을 하고 예배를 드린다. 순번제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농사를 짓거나 공부를 한다. 저녁에 다시 모여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린 뒤 취침한다. 공동체 식구들은 한 팀이 돼 농가 방문, 농번기 일손 돕기, 뮤지컬 공연, 음악회 등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

김경주(31·여)씨는 “수년간 한 공간에서 너무도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내면 저 깊은 곳 나의 밑바닥을 볼 수 있었다”면서 “그때 내가 심각한 죄인이며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정선호(30)씨는 “공동작업과 예배 등 공동체 삶 속에서 형식적 신앙이 아닌 예수를 실제로 만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빛마을교회는 또 다른 도전 앞에 놓여있다. 2015년 5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교회가 철도부지에 편입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지역개발 소식에 땅값은 3∼4배 뛰었다.

이 목사는 “공단이 제시하는 보상액으론 건축비는 고사하고 대체 부지 구입비용도 안 된다”면서 “교회는 이주대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매우 불리한 보상적용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부지편입과 관련해 우리 교회가 좋은 선례가 되도록, 영주와 빛마을교회를 주님께서 통치하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청년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온라인 서명도 받고 있다. 영주=글·사진 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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