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후 1시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개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단지 옆으로 뻗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소리는 더 커졌다. 한 주민은 “이 주변 아파트에 살면서 들개 짖는 소리를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자다가도 자주 깰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댄다”고 했다.
10여년 전 재개발 단지 원주민들이 버린 개들이 들개가 돼 돌아와 아파트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야생에서 살아남은 유기견들이 번식해 개체수가 늘어나자 아파트 단지로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일 “재개발이 이뤄지고, 원주민들이 개를 버리는 패턴이 계속되는 한 들개는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산과 가까운 재개발 단지에서는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리는 들개를 마주칠 수 있다. 대부분 골격이 크고 깡마른 모습이다. 등산로부터 단지 내 인도까지 누비는 곳도 다양하다. 이날 만난 주민 10명 가운데 9명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개를 직접 본 적 있다”거나 “주변에서 ‘요새 개들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들개는 사람을 향해 짖거나 다른 들개 무리와 싸우면서 소란을 피운다. 사람을 무는 일은 드물어도 아이와 애완견을 향해 달려들 것 같다거나 언제 사납게 돌변할지 몰라 겁난다는 게 주민들의 우려다.
광견병을 옮길 위험도 있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들개가 다른 동물들을 물면 바이러스가 전염된다. 김휘율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반드시 예방접종하는 애완견과 달리 들개는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돼 있어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들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무섭고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니 구청에서 빨리 잡아들여야 한다”는 입장과 “직접 보면 순한데다 처지도 딱하니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입장이 부딪친다.
동물단체에서는 은평구에 나타나는 들개 대다수를 은평뉴타운지구 원주민들이 10여년 전 버린 반려견들의 살아남은 자손으로 보고 있다. 당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게 된 저소득층은 반려견을 데려갈 여유가 없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더라도 개를 키울 수 없다는 공동주택 규정 때문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진경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상임이사는 “버려진 반려견들이 살기 위해 산에 들어가 야생성을 회복해가면 마침내 들개가 된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계속되고 반려견 유기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들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추정한 시내 들개는 지난해 120마리에서 올해 152마리로 늘었다.
자치구들이 나서서 들개를 잡아들이고는 있지만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은평구는 마취총을 쓰는 민간 용역업체에 마리당 50만원을 주고 들개를 잡고 있다. 은평구의 한 관계자는 "마취총 포획은 그 자리에서 사살하는 것보다 단가와 난도가 높다"며 "하지만 환경부가 들개를 야생동물로 지정하고, 사살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 한 마취총 포획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들개는 유기동물로 분류돼 사살이 금지된다.
민간업자에게 사로잡힌 들개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2주 동안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이 기간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된다.
동물보호단체는 다른 반려견처럼 들개도 입양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들개를 무작정 사살하거나 안락사시키는 건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며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주인에게 소유권을 건네받아 개 입양을 추진하는 '사육포기동물 인수제'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상임이사는 들개를 무조건 잡아들이기보다 들개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켜 더 이상 번식을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려견을 계속 버리는 이상 앞으로도 들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며 "들개들을 중성화시킨 뒤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오주환 신재희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투데이 포커스] 들개가 돼 나타난 ‘그때’ 반려견들
입력 2017-04-02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