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진(44)은 스스로를 ‘천장을 낮춘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한국의 후배 배우들에게 ‘김윤진이 했으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단다. 노력 끝에 당당히 월드스타 지위를 거머쥔 그는 “내가 할 역할은 이미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계에서 김윤진은 알아주는 스타다. 세계적인 인기 속에 시즌6까지 이어진 ‘로스트’와 지난해 시즌4까지 방영된 ‘미스트리스’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 해외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도 그는 한국 활동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고 있다. “한국은 나의 주 무대이자 집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변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진은 “오랜만에 영화를 선보이는 이 순간이 참 즐겁고 설렌다”며 웃었다. ‘국제시장’(2014) 이후 3년 만에 한국 관객을 만난다. 5일 개봉하는 ‘시간위의 집’에서 남편이 죽고 아들이 실종된 뒤 살해 혐의로 25년간 수감생활을 하는 미희 역을 맡았다.
사실상 1인2역이었다. 1992년의 ‘젊은 미희’와 2017년의 ‘늙은 미희’를 동시에 연기해야 했다.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노역(老役) 분장도 고생스러웠을 법하다. 그럼에도 김윤진은 “이런 느낌의 한국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스릴러와 공포를 섞어놓은 듯한데 결국은 가족 이야기다. 여러 장르가 잘 버무려진 비빔밥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고 만족해했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스토리의 힘이 있어야 해요. 제작비 차이는 어쩔 수 없으니 우리만의 색깔을 살려야죠.”
“배우는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는 그는 작품 안에서 예쁘게 나오고 싶은 욕심 따위는 없다고 했다. “관객은 예쁜 여배우를 보려고 1만원을 내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고질적으로 여배우 입지가 약한 충무로에서도 김윤진은 늘 도전에 앞장서 왔다. ‘쉬리’(1998)에서 여배우로는 처음 총을 들고 액션을 펼쳤다. ‘여배우 원톱의 스릴러 영화는 100% 망한다’는 인식을 깨고 보기 좋게 ‘세븐 데이즈’(2007)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여배우 영화가 많지 않아 답답해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고민은 계속될 거예요.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마다 최선을 다하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의 20, 30대 여배우들이 제 나이쯤 됐을 때는 좀 더 폭넓은 선택권을 갖길 바라요.”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김윤진은 뉴욕에 있는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왕복 4시간씩 통학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던 버릇은 아직도 몸에 배어 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부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이왕이면 더 넓은 무대에서 서고 싶기 때문”이란다.
“제 배우 인생을 돌아보면 큰 후회는 없어요. 저만의 길을 만족스럽게 걸어온 것 같아요. 길이 없으면 만들었고, 좁으면 넓히기도 했죠. 앞으로도 꾸준히 제 길을 갈 생각이에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천장 낮췄죠”… 김윤진의 후회없는 배우 인생 [인터뷰]
입력 2017-04-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