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화해에 앞장서겠습니다

입력 2017-04-03 00:00

사랑과 용서는 상대방의 동의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화해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용서의 고백이 서로에게 받아들여져야 온전히 이뤄집니다.

사랑과 용서는 인간다운 삶에 핵심이 되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긴 해도 최종 결과로 화해에 이르지 못한다면 오히려 큰 아픔을 가져옵니다. 화해되지 못한 사랑과 용서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현실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상처받고 단절된 관계도 안타깝지만, 상대방의 인정이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일방적으로 용서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일방적인 사랑과 용서의 고백은 오히려 또 다른 교만이 돼 용서와 사랑을 외치기 전보다 더 큰 인간관계의 장벽이 되곤 합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용서와 사랑을 외치며 실천한다고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박하고 오히려 독선적이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화해는 쌍방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포기하고 억울한 피해를 스스로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화해가 가능합니다.

화해란 말은 법률적으로도 사용됩니다. 양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거나 변경해 양보할 채무를 진다는 점에서 ‘쌍무계약’이라 하고, 양쪽 모두 양보를 통해 제공받는다는 점에서 ‘유상계약’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에서의 화해는 유무형의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타협하는 협상적 측면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는 한시적이며 그 적용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이란 단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세계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희생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확보된 사랑의 에너지를 하나님과 인간에게 제공하시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용서와 사랑이 화해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신분이 되시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새기고 또 새겨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그리하여 육신의 연약함을 핑계 대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피스메이커’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나부터 화해하겠습니다.

여삼열 목사 (한국피스메이커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