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성형 퍼포먼스 작가 오를랑의 작품에서 ‘대통령의 보톡스 주사’가 떠오른다. 검은 피부로 ‘분칠한’ 동양인의 얼굴에선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거세지는 글로벌 반이민주의에 대한 빈정거림이 읽힌다. 잔혹동화 같은 초현실주의적 회화에선 세월호 트라우마가 상기된다.
미술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중에 작가는 그런 시대적 정서를 작품을 통해 표출한다. 나라 안팎의 정치적 사건이 행간에 읽혀지는 두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마련한 기획전 ‘내가 사는 피부’와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진주 개인전 ‘불분명한 대답’이 그것이다.
독립 전시기획자 김경아씨가 기획한 ‘내가 사는 피부’는 ‘피부’를 키워드로 우리 사회를 읽는 참신한 전시다. 인간의 몸 중 피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보여주는 국내외 작가 18명의 작품 99점이 초대됐다.
이 전시의 ‘피부 미학’ 코너는 색칠하고 문신하고 장신구로 치장하는 이상적인 캔버스가 된 피부를 다룬다. 오를랑은 자신의 성형 수술 장면을 퍼포먼스처럼 보여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프랑스 작가.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이를 찍은 사진작품이 나왔다. 이 작품 앞에서는 여성 대통령의 보톡스 시술로 떠들썩했던 정국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문신과 보디 페인팅으로 초현실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김준, 늙어가는 피부에 담긴 함의를 일깨우는 김성수와 장숙의 작품은 미추와 노화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색소 정치학’ 코너도 재미있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다문화사회가 된 한국에서도 사회문제다. 김윤경은 인류의 피부색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살색’의 장갑을 돼지가죽으로 만들어 벽면 가득 채웠다. 피부색은 다양하다는 선언인 셈이다. 정지필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얼굴을 찍어 피부색을 검게 바꾸는 트릭을 썼다. 그 낯선 느낌이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일깨워 화들짝 놀라게 한다. 명함으로 만든 양복(이원석), 영수증으로 만든 웨딩드레스(정혜경) 같은 작품은 제2의 피부인 ‘옷’을 다뤄 피부에 대한 통찰을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4월 30일까지, 입장료 1000∼3000원(02-425-1077).
이진주(37)의 ‘불분명한 대답’전은 기억과 망각의 파편에서 건져 낸 삶의 기쁨 혹은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화폭에 그려 넣은 이미지의 파편은 그 자체가 풍부한 알레고리다. 관람객들은 작품에서 개인적 상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아물지 않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작품 ‘저지대’는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화환을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이어져 있다. 그 아래는 물 속 같기도 하고 땅 속 같기도 한데, 화환이 부서진 채 처박혀 있다. 이 작품을 보면 누구에게라도 ‘세월호의 아픔’이 느껴질 것이다.
화분에 두 다리가 식물처럼 심어져 있는 여인, 그 여인의 무릎에 누운 아기 등을 그려 넣은 작품 ‘오목한 노래’는 따뜻하면서 기괴하다. 전반적으로 비현실주의적인 분위기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전통 안료가 주는 차분한 맛을 초현실주의적 분위기에 잘 녹여냈다. 5월 7일까지(02-541-5701).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노골적이거나 은근하거나… 정치적 색채 미술 2題
입력 2017-04-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