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머니는 사진 없이 이름만 새겨진 빈 액자 9개를 조심스레 상자에 담았다. 3년 만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유일하게 품에 안은 이삿짐이었다. 목포에서 딸을 찾으면 비로소 영정이 될 물건이기도 했다.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학생 어머니 이금희(49)씨와 박은미(47)씨는 분향소 벽에서 잘 빠지지 않는 액자에 “이제 그만 가자”고 속삭였다. 다윤 학생 아버지 허흥환(54)씨는 전날 밤 이발했다. “딸이 깔끔한 걸 좋아해서. 곧 만나게 될 거잖아”라고 말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31일 미수습자 가족들도 3년을 머물렀던 진도 팽목항에 작별을 고했다. 은화 어머니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다시는 이런 땅이 없기를. 우리 같은 사람도 없기를.”
오전 4시30분 팽목항 미수습자 가족 숙소 창마다 불빛이 새어 나왔다.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 화이트마린호가 2시간 뒤 출발한다. 은화 어머니와 다윤 어머니,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부인 유백형(56)씨는 배를 타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함께할 참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이금희씨는 “배가 올라올 때도 비가 왔고 떠날 때도 비가 온다. 아이들이 막 우는 것 같다”고 했다.
3년을 머물렀지만 짐은 단출했다. 컨테이너 임시숙소 안에는 이동식 침대와 이불 몇 채가 놓여 있었다. 음료수 몇 병 들어갈 크기의 냉장고에는 ‘기억할게’라고 적힌 노란색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오전 5시28분 가족 3명을 태운 배가 세월호가 있는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이씨는 “아이를 찾아서 수습되면 나중에 다윤이 엄마와 내려와서 진도 주민들한테 인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3년간 세월호 참사 가족을 지켜본 진도 주민도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지켜봤다. 팽목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5·여)씨는 “아이들 유골 찾아서 마음 편히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하고, 남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 안에서 가족은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접했다. 3년 전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를 올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날 새벽 머리를 푼 채 구치소로 들어갔다는 뉴스였다. 기자들은 “세월호가 뭍에 닿는 날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며 공교로운 상황을 강조했다. 배에서 누군가 말했다. “어휴, 저 올림머리.”
오전 7시 화이트마린호가 물살을 가르며 움직였다. 참사 현장인 진도 동거차도 인근 해역을 떠나는 순간이다. 거대한 배는 평사도 쉬미항 장산도 임하도 등을 지나쳤다. 총 105㎞ 거리를 시속 18㎞(10노트)로 달렸다. 비는 내렸지만, 뱃길은 순탄했다. 예상보다 1시간30분 정도 이른 오후 1시쯤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화이트마린호가 닿았다. 2014년 4월 15일 인천항을 떠난 배가 1080일 만에 단원고 수학여행 목적지 제주도를 놔두고 목포에 기착했다.
해양수산부는 접안을 끝내고 세월호 선체를 철재부두에 올릴 특수 운송장비 모듈 트랜스포터를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해수부는 다음 달 6일까지 세월호 선체를 뭍으로 올리는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미수습자 수색은 그 뒤 시작된다.
선체조사위원회는 객실 절단방안은 미뤄두고 적절한 수색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철조 해수부 현장수습본부장은 “육상 운반 작업은 정밀한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시간이 걸려도 신중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임주언 신재희 이현우 기자, 세종=서윤경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안녕 팽목항… 다시는 이런 슬픔 없기를”
입력 2017-03-31 17:48 수정 2017-04-01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