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前 대통령 구속] 朴, 고비마다 惡手… 결국 ‘囹圄의 몸’

입력 2017-03-31 17:55 수정 2017-03-31 21:02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새벽 검찰 호송 차량을 타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 지지자들이 든 태극기와 성조기가 보인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의 고비마다 악수(惡手)를 뒀다. 대통령 직을 잃고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기까지 그는 줄곧 상황을 오판했다. 잘못된 대응은 오히려 파국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재촉했다는 평가다.

성난 여론 오판

국정농단 사태의 도화선 역할을 한 태블릿PC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담화에선 변명과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여론이 악화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1차 담화에서 연설문 등을 작성하는 데 최순실씨 도움을 받긴 했지만, 곧 그만뒀다고 해명했다. 11월 4일 2차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한 말은 조롱거리가 됐다.

11월 29일 3차 담화에서는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반성과 사과를 기대했던 국민은 크게 실망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고, 더 큰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수사 무시는 눈 가리고 아웅

박 전 대통령이 검찰 특수본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거부하며 끝까지 응하지 않은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검찰이나 특검에서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거듭 밝혔으면서도, 막상 대면조사를 요구받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무산시켰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내세운 대응이었지만, 대다수 국민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를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언행에서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검찰도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수사·재판 대응 태도를 문제 삼았다.

결국 대통령 직에서 파면된 뒤인 21일에야 검찰에 나왔다. 30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도 직접 출석해 역대 최장시간인 8시간41분간 심사를 받았지만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이후 8시간가량 검토 끝에 구속을 결정했다.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설명을 달았다.

탄핵은 기각? 하야 타이밍 놓쳐

박 전 대통령은 사태 초기 하야(下野)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진해서 물러났다면 연금과 비서진 지원 등 전직 대통령 예우가 유지된다. 야권에서도 초유의 대통령 파면이 불러올 반발을 의식해 명예퇴진론, 정치적 사면론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하다 결국 탄핵됐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선고 직전까지도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8대 0이라는 헌재 결론과는 거리가 먼 바람이었다. 탄핵 21일 만에 구치소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초췌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