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 처지가 아무리 궁해도 체면 깎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떳떳함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지금, 반상(班常), 즉 양반과 상인은 따로 없지요.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 양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입니다. 겨는 태워도 불기운이 그리 세지 않지요. 점잖고 의지가 굳은 사람은 좀 춥더라도 겻불 근처에 가서 초라하게 손 비비며 움츠리고 있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겨’는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을 찧어 벗겨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벼의 겉을 벗긴 게 왕겨, 등겨이고 현미를 조금 벗긴 것이 ‘쌀겨’이지요. 이를 미강(米糠)이라고도 합니다.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때울 때의 아내, 즉 가난할 때 고생을 함께한 아내를 이르는 말 조강지처(糟糠之妻)에도 들어 있습니다.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을 이르는 말입니다. 한겨울 공사장이나 시장통에서 커다란 깡통에 불을 피워놓고 둘러선 사람들을 보게 되지요. 그 옆에 다가가서 언 몸을 살짝 녹이고 가는 것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작은 이권이라도 보이면 파리처럼 달려들어 다투는 세상,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조금 춥다고 겻불 주위나 기웃거리는 구차함을 부끄러워했던 선현들의 기백이 산같이 커 보입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겨가 타는 뭉근한 불 ‘겻불’
입력 2017-04-01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