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北 ‘인질 외교’에 백기… 김정남 시신 北 송환

입력 2017-03-30 21:30 수정 2017-03-31 00:48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사진)의 시신을 북한의 유가족에게 돌려보내는 데 합의했다고 30일 공식 발표했다.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이 암살된 지 45일 만이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억류 중인 자국민 송환을 조건으로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은신했던 김정남 암살 용의자들의 출국을 허용하는가 하면 양국 간 비자면제협정 재도입도 검토키로 했다. 북한의 ‘인질 외교’에 말레이시아가 백기 투항하면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번 사건은 결국 영구 미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에 게재한 말레이시아와의 공동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사망자(김정남)의 가족으로부터 시신과 관련한 모든 문건을 제출했으며 말레이시아는 시신을 북한에 있는 사망자의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가족은 김정남의 이복동생 김정은과 김여정일 가능성도 있다.

이어 북한은 양국 국민의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안전을 담보하는 데 말레이시아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평양에 있는 말레이시아인들이 귀국하고 쿠알라룸푸르의 북한인들도 출국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으로 파기된 비자면제협정 재도입 등 양국 관계를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도 이날 성명을 통해 김정남 시신 부검 절차가 끝났으며, 유가족이 시신 인도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기 때문에 이를 승인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에 억류됐던 말레이시아인 9명이 이날 밤 평양을 떠나 이튿날 새벽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던 모든 북한인들도 말레이시아를 떠날 수 있도록 허가한다고 덧붙였다.

김정남 시신은 이날 오후 6시 말레이시아항공 MH360편에 실려 중국 베이징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에 보내질 예정이다.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현광성(44)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 등 김정남 살해에 연루된 용의자들도 해당 항공편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작 총리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안보가 최우선 순위였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자국민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반인도적 ‘테러 범죄’에 면죄부를 준 꼴이어서 국제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말레이시아 당국은 사건 발생 당시 김정남을 한국인으로 오인해 사망 사실을 주한 말레이시아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가장 먼저 알렸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