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 울부짖고 朴은 굳은 표정… ‘운명의 하루’

입력 2017-03-30 18:06 수정 2017-03-30 21:45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지훈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30일 ‘법과 원칙’ 앞에서 길고도 절박한 하루를 보냈다. 오후 7시29분 박 전 대통령이 8시간40분에 걸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서울중앙지법 4번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장심사제도(1997년)가 도입된 이래 20년 만에 최장 심문 시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검찰이 마련한 K7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은 서울중앙지검 1002호에 마련된 임시 유치시설로 향했다. 지난 21일 검찰 조사 당시 휴게실이었던 그곳에서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날 새벽까지 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10일 만의 외출

박 전 대통령 삼성동 자택 주변은 이날 아침부터 공황 상태였다. 지지자들은 오전 7시 태극기를 들고 “대통령님을 절대 못 보낸다”고 외치며 온 동네를 깨웠다. 더러는 길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오전 10시까지 자택 반경 150m에 500여명이 모였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은 경찰 호위를 받으면서 등교했다.

박 전 대통령 미용사 정송주·매주 자매는 오전 7시10분 자택에 들어가 1시간30분 뒤 나왔다. 오전 9시34분에는 동생 박지만 EG 회장 부부와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이 찾아왔다. 같은 당 최경환 조원진 의원 등 친박(親朴) 핵심 의원들도 뒤를 이었다.

오전 10시9분 박 전 대통령이 남색 재킷과 바지정장 차림으로 자택을 나섰다. 검찰 출석 당시보다 얼굴은 수척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곧장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에 탔다. 지지자들은 움직이는 차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흥분한 지지자들이 도로로 달려 나오는 바람에 경찰이 설치한 펜스 일부가 무너졌다. 박 전 대통령 차량은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일대 약 6㎞를 9분 만에 달려 오전 10시18분 서초동 법원 청사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전직 대통령급 경호를 받았다.

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 표정은 굳어있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검 출석 당시 보였던 잠깐의 미소는 사라졌다. 청사 4번 출입구로 향하며 두 차례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어 고개를 들고는 자신이 심문받게 될 법원 청사 외벽을 바라보고 출입구 보안검색대 인근 포토라인까지 55걸음을 걸었다.

그는 취재·촬영기자 84명과 마주하자 고개를 돌려 청와대 경호원에게 “(법정이) 어디냐”고 물었다. 1m 거리에서 취재진이 외쳤다. “국민께 어떤 점이 송구하다고 했던 것이냐.” “뇌물 혐의를 인정하느냐.” “세월호 인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 박 전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경호원 2명이 카메라를 가로막는 사이 박 전 대통령은 보안검색대를 지나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한 층 높이에 위치한 321호 법정까지 스물여덟 계단을 올랐다.

2번 휴정…역대 최장 심리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가 심문을 시작했다. 강 판사는 3일 전 사건을 배당받은 후 12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 기록을 검토해 왔다. 오후 1시6분 강 판사가 1시간가량 휴정을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 변호인 2명과 함께 변호인 대기실에서 도시락 등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4시20분 15분가량 재차 휴정한 뒤 오후 7시19분에야 심문이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이 20여분 뒤 법원 청사를 완전히 빠져나가자 법원은 정문 등에 대한 경호·보안을 모두 해제했다.

양민철 최예슬 기자 liste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