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前 대통령 ‘피말린 시간’

입력 2017-03-30 17:57 수정 2017-03-30 21:35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 321호에서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석(일반 형사법정의 증인석)에서 맞은편에 앉은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의 질문에 답했다. 검사와 변호사도 함께 앉아 영장 발부와 기각 사유를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심문은 1997년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이래 최장 시간인 8시간40분을 기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지막 항변을 위해 법정을 오가는 길에도 끝내 침묵했다. 뻣뻣하게 굳어진 얼굴로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을 외면한 채 애써 정면을 응시하며 걸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나온 지 20일 만에 구속 문턱에 선 낙담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30일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첫 번째 전직 국가원수로 기록됐다. 전직 대통령 본인 또는 가족이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된 장면이기도 했다.

영장 심사는 역대 최장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7시간30분 심문시간을 깨고 8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서울중앙지검 10층 1002호에 마련된 임시 유치시설로 호송돼 심문 결과를 기다렸다.

국민 앞에 말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은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변론을 했다. “나는 죄가 없다”며 검찰이 적용한 혐의 전부를 승복할 수 없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뇌물죄 성립 여부를 놓고 방대한 증거자료로 압박하는 검찰과 무혐의를 주장하는 박 전 대통령 변호인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구속까지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취지의 호소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을 불러 21시간 동안 조사했다. 이어 27일 헌정사상 세 번째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별지를 포함해 1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검찰 특수본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5개월간 수사한 결과가 집대성됐다. 대표 혐의인 삼성그룹으로부터의 298억원 뇌물수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와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을 비롯해 13개 혐의가 담겼다. 검찰은 이에 더해 박 전 대통령의 반성 없는 태도, 사안의 중대성, 구속된 공범들과의 형평성 및 증거인멸 우려 등을 들어 구속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검찰로서도 박 전 대통령 구속 수사에 명운을 건 것이다.

글=지호일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