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헌재 결정 이후 11일 만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그로부터 9일 뒤인 30일엔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두 번 모두 박 전 대통령에겐 썩 내키지 않은 외출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약 21시간30분에 걸쳐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 중 최장 조사 시간을 기록했다. 특수본이 박 전 대통령을 약 14시간 동안 신문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이후 7시간 넘게 피의자 신문 조서를 열람·수정했다. 이 같은 장시간 조서 검토도 유례없는 일이다. “조서가 너덜너덜해졌다”는 말이 검찰 관계자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며 보였던 옅은 미소는 청사를 나서며 사라졌다. 삼성동 집 앞에 도착해 지지자들을 향해 애써 웃음 지었지만 이마저도 오래 가진 못했다.
특수본은 조사 6일 만인 지난 27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선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특수본이 법원에 낸 91쪽에 이르는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서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강요 혐의 등이 적시됐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에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조사 당시 “영장 청구도 대비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같은 검찰의 빠른 행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당일 오후 급히 박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3시간가량 머물며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 검찰 조사 직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신 검사님들과 검찰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기자들에게 문자로 이례적 입장을 보냈던 손범규 변호사는 이날 취재진과의 접촉을 끊었다. 입장 역시 밝히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던 박 전 대통령은 이튿날에야 변호인단을 통해 예정된 영장심사에 직접 출석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곧장 유 변호사 등과 영장심사 대비에 들어갔다.
같은 시각 박 전 대통령 자택 주위로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몰렸고, 이들은 ‘불구속’을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자유한국당은 영장심사 전날 친박계 의원을 중심으로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하기도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헌재 파면 결정 후 ‘격동의 20일’
입력 2017-03-30 18:03 수정 2017-03-31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