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매장요?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지난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을 찾아 매장 직원에게 친환경제품 매장 위치를 물었더니 머쓱한 대답만 돌아왔다. 다른 직원에게 묻고 물어 겨우 찾은 친환경제품 매장은 잘 보이지 않아 그 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곳이었다. 생활용품이 즐비한 ‘생활잡화코너’ 한 귀퉁이에 친환경제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품 구성도 간단했다. 친환경 주방세제만 잔뜩 놓여 있었다. 같은 날 찾은 관악구의 다른 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갖가지 생활용품이 놓여 있는 판매대 맨 아래쪽에 있는 친환경 주방세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정부는 2012년 7월부터 규모 3000㎡ 이상의 대형 점포에서 친환경인증 제품과 GR마크(우수재활용제품)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10㎡ 이상 마련토록 하는 ‘녹색제품 촉진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법은 시행 5년도 채 안 돼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죽은 법’이 됐다.
이 법은 소비자의 녹색제품 구매를 유도해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막고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해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키지 않으면 과태로 300만원에 처해질 수 있다는 조항도 달았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009년 대통령 직속의 ‘녹색성장위원회’가 등장했고, 이후 친환경상품 구매촉진 정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이 법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쳤다는 평가다. 대형 유통매장이 법을 이행하는지 여부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는 지난 2013년 506곳을 실태 조사한 이후 3년간 손을 놨다. 30일 환경부에서 입수한 ‘지자체별 지난 3년간 녹색제품 판매장소 지도점검 현황’을 보면 전국 17개 시·도에서 4곳만 매년 실태조사를 하고 있었다.
관리·감독 주체가 지자체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울시내 구청 6곳에 무작위로 녹색제품 판매 실태조사 여부를 문의한 결과, 6곳 모두 관리·감독 주체가 관할 구청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법 자체도 ‘구색 맞추기’ 식이었다. 친환경 제품은 판매 매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다른 제품과 함께 진열해도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두 제품만 생색내기 용으로 판매해도 문제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10㎡ 이상의 판매장소가 설치돼 있으면 친환경 제품이 아닌 제품과 섞어서 판매해도 된다”며 “사실상 몇 개라도 판매만 되고 있으면 처벌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친환경 제품은 2010년대 초중반 때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그 이후로는 정부도 기업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친환경제품 소비를 이끌 동기 부여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여준상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많은 소비자들이 녹색제품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가 행정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했다”며 “상징적으로 법만 시행하는 게 아니라 세제혜택, 연말정산 세금 환급제도 등 실질적인 동기 부여로 소비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업무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희숙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친환경제품 구매를 정부 정책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들을 움직이려면 구체적인 정보제공과 친환경 제품 사용에 대한 교육 등 근본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녹색열풍 멈춘지 4년여… 친환경 매장 ‘뒷방 신세’
입력 2017-03-3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