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정 기간 독립촉성국민회에 기독교 지도자 대거 참여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 초석 놓았다’

입력 2017-03-31 00:01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는 29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대에서 강좌를 개최하고 해방공간 속 기독교의 역할을 조명했다.
1945년 광복부터 1948년 8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까지 3년간의 미군정(美軍政) 기간 기독교 지도자들과 미국 선교사 2세의 정치적 역할과 영향력이 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을 놓았던 한국교회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촉성국민회 이끈 기독교 지도자들

이은선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는 29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대에서 열린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영익기념강좌에서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우파조직은 1946년 조직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였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민회는 해방공간에서 우파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승만과 김구가 연합해 만든 조직으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단독선거 추진 기구 역할을 했다”면서 “여기에는 이승만 김구 함태영뿐만 아니라 김관식 김여식 이규갑 배은희 이관운 남천우 목사 등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민회에 12명의 부장이 있었는데 4명이 기독교인일 정도로 기독교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면서 “반탁운동이 벌어지자 우익과 좌익의 분명한 대항전선이 생겼고 반공사상으로 무장했던 기독교인들이 국민회에 참여해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을 놓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도 “한국근현대사에서 광복 후 정치단체를 기술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라면서 “국내 역사학계에선 사회주의 성향의 건준을 주류단체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결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반면 대한민국 건국으로 이어지는 해방 후의 역사적 측면에서 우파 인사들이 주도했던 국민회의 비중은 매우 크다”면서 “그러나 현재 역사교과서는 국민회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한국문화 익숙한 선교사 2세의 활동

해방 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한반도에 대한 지식을 지닌 인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미군정이 선교사나 그 자녀들을 중요한 협력자로 중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동선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군정기 직접적 영향력을 미친 선교사 2세는 조지 윌리엄스와 클라렌스 윔스였다”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능숙했던 두 사람은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통역이 따로 없던 미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윌리엄스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상당수 알고 있었으며, 조병옥 황인식 박종만 이묘묵 등 영명학교 관련 인물들을 추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방 이전 광복군을 훈련시킨 경험이 있던 윔스도 미군정에서 좌우합작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힘썼으며 서재필을 귀국시키는 데도 일조했다”고 말했다.

강좌를 준비한 박명수 현대역사연구소장은 “해방이후 선교사 2세들의 활동을 연구·조사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당시 선교사 2세가 종교·교육적 측면을 넘어 어떻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것은 한국근현대사 속 교회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