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만 ‘뇌물죄’ 적용… 그래도 불안한 SK·롯데

입력 2017-03-30 18:02 수정 2017-03-30 21:12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기자들 질문에도 침묵한 채 법정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삼성그룹만 빼면 과연 모두 순수한 피해자들이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뇌물수수’ 부분은 ‘삼성그룹 관련 범행’의 하위 항목에 서술돼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 적시된 대기업이 삼성뿐인 것은 아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61·수감 중)씨의 제의로 지난해 2∼3월 상위 9개 그룹 총수들을 단독 면담한 사실을 밝히며 유독 SK·롯데와 관련된 문장을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어 넣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만나서는 K스포츠재단이 계획하던 해외 전지훈련 명목으로 80억원을 지원토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의 면담에서는 K스포츠재단에서 건립할 체육시설 공사대금 명목으로 70억원을 지원토록 요구했다고 적시했다. 이 금액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의율된 특가법상 뇌물 액수에서 빠져 있다. SK는 협상 후 결국 지원하지 않았고, 롯데는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기 직전 돈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두 기업에 대해 삼성의 사례처럼 ‘요구형 뇌물’ 구도를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나 롯데 측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득실도 감안했는지 살핀다는 얘기다. 검찰은 SK 측에 최 회장의 사면을 포함, CJ헬로비전 인수 등의 현안이 있었음을 주목해 거래 여부를 의심 중이다. 롯데는 면세점 특허 재취득에 성공한 일련의 과정이 의혹 속에 있다.

뇌물죄 입증의 열쇠가 되는 ‘부정한 청탁’ 대목은 의도적으로 뭉뚱그려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은 향후 수사계획 등의 노출을 막기 위해 구속영장 청구서에 세세한 부분은 서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이 확보되면 대기업들의 뇌물 의혹 수사는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 회장과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를 지난 18일과 19일 각각 소환조사한 상태다.

대기업 수사와 함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역시 마무리돼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지난 24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압수물을 분석한 뒤 조만간 우 전 수석을 소환할 방침이다. 우 전 수석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하거나 본인 스스로 관여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최태민씨 때부터 축적됐다는 최씨 일가의 대규모 불법재산 의혹,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의 관제데모 의혹,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경찰인사 개입 시도 의혹 등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크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