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강장애학생은 지난해 말 기준 1675명이다. 백혈병 등 장기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실시간 화상 수업을 통해 출석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올해부터 학습선택권 강화라는 이유로 원격강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토익 인강(인터넷 강의)처럼 미리 녹화한 강의를 듣는 주입식이다. 건강장애학생 학부모와 아이들은 지난겨울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 모였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생님과 친구들을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기존의 양방향 화상 수업이지 녹화 강의가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현재 원격강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건강장애학생은 채 100명이 안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교육부의 강요는 선의를 가장한 폭력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공권력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을 협박하고 고문한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100년 전에 국가폭력의 변이를 예언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1900년)라는 글에서 “국가폭력은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국민들의 삶 속에 침투시킨다”고 말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서 ‘새로운’ 유형의 국가폭력을 극명하게 목격했다. 구조 실패는 폭력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피해학생 부모들에게 징병검사 안내문을 보냈다. 유족들이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투쟁한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인양비용을 들먹이며 세금도둑 소리까지 듣게 했다.
국가의 이런 보이지 않는 폭력은 사회로 전이됐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텐트 앞에서 치킨을 뜯으며 웃고 있는 일베들은 국가의 폭력성에 기생했다. 세월호가 3년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육지로 다가오는 지금도 유가족에 대한 폭력은 여전하다. 전직 아나운서는 바닷물에 쓸려갔을지 모를 몇 명의 아이들을 위해 수천억원을 써야겠느냐고 자랑스럽게 광장에서 외쳤다. 천안함 희생자보다 세월호 피해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았다는 ‘가짜뉴스’도 나오고 있다.
며칠 전 인양과정에서 ‘돼지뼈 해프닝’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는 내 자식의 유골 한 조각이라도 찾길 바라는 미수습자 부모의 마음을 또 한번 다치게 했다. 정부의 무능이라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몰감수성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5살 딸아이가 1년째 투병 중이다. 혹시 내 딸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두렵다. 지금도 간혹 자는 아이의 코에 귀를 대고 숨 쉬는걸 확인한 뒤에야 안심하고 잠든다. 지난 1년 동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도 몇 번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런 근심조차 할 겨를도 없이 아들과 딸을 잃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 세월호와 천안함이 뭐가 다르냐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명백히 다르다. 천안함은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지만, 세월호는 국가에 의한 피해다. 국가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진실규명을 원하는 유가족들에게 무언의 폭력을 가해 왔다. 그분들은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외롭게 싸웠다. 이제야 세월호 인양 소식이 실시간 중계되는 등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지만 대다수는 그들을 잊고 살아왔다.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폭력을 끊어내야 한다. 방법은 건전한 마음을 가진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뿐이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댈 수 있는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세월호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세상만사-이성규] 폭력 국가
입력 2017-03-30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