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행한 대로 갚으리라

입력 2017-04-01 00:03

알곡과 쭉정이는 겉모양이 아주 흡사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고 없고의 근본적인 문제로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편하고 쉬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가 넓은 문을 좋아하고 좁은 문을 꺼려합니다. 하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7:13∼14)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어쩌면 참된 신앙의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는 사실을 아예 애써 외면하고 기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동족의 위협을 비롯해 갖가지 어려움과 위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길을 기꺼이 기뻐하며 달려간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신실한 충복이었습니다. 심지어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정녕 주님을 만난 자라면 마땅히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용서와 사랑과 전도하는 삶입니다. 용서와 사랑과 전도는 각기 다른 셋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입니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인 삶을 사는 자들이 행하는 예배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현대교회를 향하여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는 겁니다.

주님께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말하면서도 혹여 새 계명을 우습게 여긴다면, 그는 주님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그는 쭉정이에 불과합니다. 쭉정이는 불 못에 던져집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전도하며 사랑한 만큼 주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될 사실은 결실까지도 씨를 뿌리는 자의 몫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도를 하는데 있어서 누구나 부담을 갖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결실까지 책임져야 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월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7∼8)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디 열심히 힘을 다해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복음전파는 복음서의 결론이며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김정우 대구 열방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