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선수들이 나온다. 바른정당이 지난 28일 유승민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세웠다. 자유한국당은 31일 후보를 확정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3일, 국민의당은 4일이다. 치열하게 달릴 주자들이 한 명씩 출발선에 서고 있다.
선수 명단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변은 없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들어가 도장을 찍고 나오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 명단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고, 바꾸려 한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한 직후 치러지는 올해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관심사는 권력 나누기다. 처음에는 개헌을 앞세운 권력분점이 논의됐고 곧이어 연정이 이슈로 떠올랐다. 지금은 연대와 후보 단일화가 거론된다. 출발선에 속속 올라서는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이 판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사실 연정은 2017년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지금의 의석분포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여러 해결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처럼 야당을 통째로 끌어들이거나 김영삼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의원들을 각개 격파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1년 12월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념이 같은 정치인끼리 모여 정당을 유지토록 하겠다는 정계개편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국회와 권력을 나누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선거라는 절차를 거쳐 국민에게 권력을 받기는 대통령이나 국회나 마찬가지인데 서로 싸우고 무시하니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연정이 대선 전에 연대나 단일화라는 이름으로 이뤄질지, 대선 후에 조각 과정에서 드러날지 궁금해한다. 그냥 궁금증이 아니다. 대선이 끝난 뒤 정계개편이 시작돼 20대 국회를 구성한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는 시나리오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긴 궁금증이다. 연인원 1600만명이 광장에 모여 잘못을 저지른 권력을 평화롭게 끌어내린 나라다. 이들의 정치의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물론 연정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도 많다. 4개 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지금의 다당제는 이념적으로 분화된 유럽의 다당제와 달리 권력투쟁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데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존재감 없는 당을 유지하면서 고생하는 대신 현재 또는 미래의 권력자와 합당해 자리를 얻는 한국정치의 패턴이 양당제를 유지시켰다는 설명이 냉소만은 아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연정과 야합을 구분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그렇지만 연정은 당장의 국정운영뿐 아니라 우리 정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이다. 지난 총선의 민심은 특정 정당의 권력독점을 거부했다. 유권자들은 앞으로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과거의 관행을 답습해 유권자의 뜻을 억지로 바꾸려 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다시 바빠질 수 있다. 개헌도 그렇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앤다며 헌법 조문 먼저 고치면 무엇보다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권력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기에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없다.
선거에서 이기면 권력을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연정은 늘 쫓아가는 사람이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권력의 어느 곳을 나누겠다는 청사진은 나오지 않고 특정 정치세력의 연대 이야기만 나온다. 정당이 이념적 지향점을 갖추고 연정을 이루는 게 정상이지만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두고 연정을 시도하면서 이념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런 세련된 정치가 보고 싶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여의춘추-고승욱] 연정, 단일화 그리고 야합
입력 2017-03-30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