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영희 <10·끝> 파그라움 센터가 심은 희망의 씨앗

입력 2017-03-31 00:06
황영희 선교사(뒷줄 왼쪽 다섯 번째)가 파그라움 센터 앞에서 아이들, 현지 스태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월 28일은 필베밀하우스의 이삿날이었다. 수년간 소망해오던 파그라움 센터로 입주했다. 난생 처음 양변기를 사용해 본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변기 뚜껑 두 개를 망가뜨리며 톡톡히 신고식을 치렀다.

센터는 2013년 첫 삽을 뜬 후 건축비 조달이 여의치 않아 공사를 중단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3분의 2가량 건축이 진행됐지만 최근 3층 공사를 하던 중 건축비 지급이 늦어지며 완공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새하얀 2층 건물 위로 건축 자재가 비죽비죽 튀어나온 모습이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 같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처럼 3층 건축은 멈췄지만 1·2층은 센터 사역의 잇몸이 돼주고 있다.

센터는 이 동네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다. 3층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난과 장애로 소외된 이들이 사용하는 곳이기에 더 멋지게 만들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던 낮은 사람들을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시설인 파그라움 센터가 품어준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존귀하게 대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센터의 일주일은 바쁘게 흘러간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진 밀알복지재단 간사들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봉사단이 영어 수학 태권도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일요일엔 해맑은 웃음소리에 찬양과 기도까지 얹은 예배가 진행된다.

스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의 학부모들로부터 문의가 오기도 한다. “그곳에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늘 같다. “파그라움은 누구에게나 열린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듯 이곳도 누구에게나 열린 곳으로 느껴지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이 길을 잃어버리거나, 먼 길을 가게 되더라도 따뜻한 집처럼 찾아올 수 있는 곳이 파그라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도 열린 마음으로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들을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지난해엔 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PYC(Paglaum Youth Communication)란 조직을 만들었다. 나와 남편이 이곳을 떠나더라도 센터가 주님의 뜻대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PYC를 통해 아이들은 센터의 규칙을 직접 정하고 이용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주인의식과 리더십을 쌓았다. 지역 내 도움이 필요한 장애아동들을 발굴하고 자신이 찾은 장애인 친구들과 짝을 지어 캠프도 다녀왔다. 1년 동안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 이들이 변화시킬 스눅 땅의 5년, 10년 후가 기대된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놀이터가 생기고 나무가 심어지고 건물이 건축되는 동안 아이들도 조금씩 성장했다. 그 모습을 보는 지역사회 사람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외당하던 장애인들, 손가락질 받던 문제아들이 파그라움 안에선 차별 없이 어울리며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상처로 아픔이 있던 아이들은 “예전엔 삶이 고달픔의 연속이었지만 파그라움에 오고 난 후 기쁨과 행복으로 차 있다”고 말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지금까지의 고난과 역경이 눈 녹듯 사라진다.

하나님이 심으신 씨앗들이 어떻게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까. 파그라움이 지금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세워지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소망이 지어져갔으면 좋겠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