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송병구] 국가는 연애와 결혼을 許하라

입력 2017-03-30 17:23

섬 속의 섬인 강화도 석모도에 사는 친구 목사에게 필리핀 선교여행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 청년과 동행했는데, 듣자하니 ‘비전 트립’이란 명목의 선교(宣敎)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선교는 맞선을 본다는 의미의 ‘선’자와 깊이 사귄다는 뜻의 ‘교’자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름다운 선교를 했더라. 농촌 총각이 장가들기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과연 꿈 많은 처녀 누군들 농촌으로 시집 와서 시부모님 모시고, 힘든 노동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려고 할까. 비록 수도권에 속한다지만 강화도에서 한 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중의 섬에 사는 농촌 총각이 대한민국 처녀에게 장가드는 일은 확률이 마치 바늘귀 같았다.

석모도에 있는 교회는 안팎으로 결혼 독촉에 시달리던 청년들을 위해 필리핀 선교사를 통해 신붓감을 찾기로 하였다. 국내에 여러 국제결혼 단체가 있지만 지나치게 상품화된 경향이 있고, 사람 사이의 문제를 서류 몇 장으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거리낌도 있었다. 그래서 ‘겨우’ 30대 중반의 노총각들은 일찌감치 시선을 바꾸어 해외로 눈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바람을 잡아준 담임목사는 필리핀까지 함께했다. 결과적으로 ‘맞선’ 선교여행은 대성공이었다.

필리핀 현지 교회들은 한국 농촌교회의 국제결혼 프로젝트에 성의를 보였다. 지방연합회 차원에서 광고를 하고, 스무 살을 갓 넘긴 처녀 여섯 명을 추천해주었다. 국제결혼을 원하는 한국인은 대개 40대가 넘은 ‘고령’인데, 강화도령 세 명은 이제 30대 중반이니 더없이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동남아 나라들의 경우 대부분 20대 초에 혼인을 하니 적령기를 넘긴 처녀를 찾는 일은 아주 어렵다고 하였다.

두 차례 맞선 끝에 세 총각은 모두 자기 짝을 만나는 일에 성공했고, 각각 여성의 가정을 방문해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정식으로 사귀기로 허락받았다. 이제 메일을 주고받으며 봄 새싹처럼 사랑을 키우면 결혼은 시간문제처럼 여겨졌다. 바쁜 농사철을 넘기면 2차 신사유람단도 조직하기로 기약했다.

그러나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지는 못했다. 당장 메일을 쓰자니 영어가 어려웠고, 언어가 다른 처지에 연애감정을 지속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연애에도 국가적 인프라가 필요했던 것이다.

농촌 총각 문제만이 아니다. 요즘 도시 총각, 도시 처녀들도 결혼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결혼 상품화는 국제 혼인보다 국내 혼인이 더 심각하다고 한다. 삼포세대로 비유되듯 취업절벽과 결혼 고비용, 불안한 육아환경 등 젊은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첩첩하기만 하다. 이젠 결혼 풍속도가 달라져 서울에서의 혼인 건수는 2014년 6만4823건으로 5년 전과 비교해 1만3922건 감소(-17.7%)했다. 국제결혼은 전체 혼인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데, 그중 농촌이 절반을 차지한다. 이젠 결혼이 세대 문제가 아닌 계급 문제란 말도 나온다.

당장 대통령 선거를 40일 앞두고 각 당 입후보자들은 맞선장에 나온 선남선녀처럼 저마다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고, 선택을 유혹한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농촌 총각 장가들기 대안을 비롯해 좌절한 삼포세대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 대책이다.

결혼 문제는 당장 청년의 기를 살리는 일부터 일자리, 노동의 질, 다문화, 임대주택, 육아와 교육은 물론 저출산과 고령화 등 삶의 품격과 인구 대책의 전반적인 문제를 모두 포괄한다. 사실 결혼은 젊은이의 처지와 부모의 근심을 넘어 국가와 인류의 미래이고,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란 천부적 권리이며, 헌법상 국민적 행복권이 아닌가?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