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명함과 악수

입력 2017-03-30 17:24

과학자와 어린이책 작가들이 만나는 특강이 있다. 작가들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시리즈란다. 첫 번째 주제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이 달라질까’로 컴퓨터공학자가 강단에 섰다. 강연자는 ‘봉숭아학당’처럼 끌어가고 싶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지만, 산업혁명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산업혁명은 어린이의 피를 먹고 자랐다’는 말이 작가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런 청중의 얼굴을 보고 그는 일찌감치 그 야무진 꿈을 접었다고 한다. 거기다 에베레스트 산맥 같은 뾰족뾰족한 그래프(상당수 작가들은 수학을 추상회화쯤으로 여긴다), 초지능과 싱귤래리티 같은 무시무시한 전문용어들(싱귤래리티란 신 귤과 관계있는 건가?), 7년쯤 뒤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간이 인체에 이식될 거라는 충격적 예언(대부분 작가들은 그때에도 프린터에서는 종이만 나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을 거다)들이라니!

아, 오해 마시기를. 강연은 재미있었고, 청중은 강연자가 스스로를 ‘세계적인 석학 수준’으로 밀어넣을 만큼 난처한 질문을 퍼부었으니까. 미래에는 컴퓨터가 갑질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잘 아는 1% 사람들이 갑질 한다, 그러니 그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우리가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한다, 뭐 그 정도를 우리는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모든 강연과 답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명함과 악수’였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 영재수업을 맡고 고민고민하다가 그는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주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놀랍도록 오랜 시간 집중했고, 수업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 어린이책 작가들은 이렇게 나서야 한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문명(혹은 야만)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기본은 존중과 이해, 겸손과 배려다. 사람, 동물, 식물 모든 생명 있는 것에게 가져야 하는 태도가 이제는 기계에게도 요구되는 시대로 넓혀진 것이다. 기계와 소통하는 감성과 창의력이 미래의 자산이라면, 어린이책 작가들은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