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미생물 연구로 인류 역사 바꾼 13명의 이야기

입력 2017-03-31 05:03

그때는 참 미개한 시절이었다. 볼거리에 걸린 아들이 “왜 저는 병에 걸린 건가요” 물으면, 아버지는 “악마의 영혼이 네 몸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무식하기 한량없는 얘기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악마를 탓하지 않으면 어떤 설명도 불가능했고, 마을 어르신들 역시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 시기는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안톤 반 레벤후크(1632∼1723)가 태어난 17세기 초반이다. 하지만 고집 세고 의심 많았던 레벤후크는 저런 설명이 얼토당토않은 답변이라는 걸 증명해내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현미경을 만들어 인류 최초로 미생물의 세계를 탐사한 인물이었다.

레벤후크는 ‘주위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는 강아지’ 같았다고 한다. 현미경을 만들어 주야장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인간들 중 처음으로 모세혈관을 관찰했고 정자와 혈구를 발견했다. 그의 현미경 덕분에 후세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질병의 메커니즘을 하나씩 밝혀냈고, 인류는 질병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과학자 폴 드 크루이프(1890∼1971)가 쓴 이 책은 레벤후크처럼 미생물 연구로 인류 역사를 바꾼 학자 13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26년 발간돼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된 스테디셀러다. 발효의 비밀과 콜레라의 원인을 각각 밝힌 루이 파스퇴르(1822∼1895)와 로베르트 코흐(1843∼1910), 백혈구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일리야 메치니코프(1845∼1916) 등의 인생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91년 전 세상에 나온 책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맛깔나고 내용도 풍성해 막힘없이 읽힌다.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자를 영웅처럼 미화하지도 않는다. ‘미생물 사냥꾼’들의 업적을 설명하면서 인간적인 면모까지 가감 없이 전하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뒤표지에는 ‘수많은 사이언스 키즈(Science Kids)를 만들어낸 바로 그 책’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