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기득권층 민낯 날카롭게 해부·고발

입력 2017-03-31 05:02
‘기득권층’을 통해 상류층의 커넥션을 신랄하게 고발한 오언 존스. 1984년생인 그는 영국 매체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자 촉망 받는 정치평론가로 필명을 날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저작인 이 책을 통해 “권력은 요구 없이 그 무엇도 내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북인더갭 제공
기득권층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났나? 도대체 기득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권력을 가진 자, 부(富)를 가진 자, 지배계층, 엘리트 집단….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인 기득권층의 정의는 다양하다. 여기서는 ‘다수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 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집단’으로 규정한다.

기득권층이란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용례로 쓰이게 된 것은 1955년 영국 보수 저널리스트 헨리 페얼리의 고정칼럼을 통해서다. 현재의 기득권층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공유된 사고방식이다. 바로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이다.

그 사고방식의 기본은 이것이다. 시장이 알아서 최선의 길을 찾는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각종 규제는 뛰어난 개인들의 재능 발휘를 방해할 뿐이다…. 즉 ‘자유시장’이라는 신념이 토대가 된 자유방임주의다. 이 뿌리에는 부와 권력을 체계적으로 최상층에 재분배하는 데 앞장서온 우익 이론가인 선동자들(The Outriders)이 있었다. 70년대 초만 해도 주변부였던 이들은 ‘부자감세’ ‘규제철폐’ ‘민영화’ 등을 외치며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를 거쳐 확고한 이데올로그로 자리 잡았다.

기득권층을 결속시켜 주는 것은 공통의 사고방식, 재정적 상호연관, 회전문 인사다. 이를 통해 오늘날 부와 권력의 집중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세상을 농락하는 먹튀의 귀재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네트워크인 영국 기득권층의 실상을 낱낱이 해부하고 정치경제적 폐해를 고발한다. 2011년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차브(Chavs)’를 펴내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던 영국 칼럼니스트 오언 존스의 작품이다.

책은 기득권층의 커넥션에 주목한다. 선동자들의 이론적 토대 위에 정치 엘리트, 기업 엘리트, 주류 언론인, 우익 싱크탱크 등이 강력한 연줄을 형성한다. 대기업 후원은 끈끈한 연결고리다. 정치적 동기를 가진 소유주가 지배하는 주류 언론은 기득권의 대들보다. 기득권층의 정책과 관념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전파한다. 정계·재계·언론계 등을 서로 넘나드는 회전문 인사는 유착을 더욱 강화한다.

기득권을 통해 작동하는 것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다. 국가는 부자와 대기업을 지원하고, 필요하면 언제나 구제해준다. 탐욕으로 무너진 기업과 은행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은 엄청나다. 반면 가난한 이들이 보조금의 수혜자로 국가에 의존하면 이들은 ‘빈대’나 ‘밥벌레’로 악마화된다. 그리고 최하층을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대중의 분노는 사회의 상부가 아닌 최하층에게로 굴절된다. 기득권층의 적인 노동조합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기본이다.

대안은 없는가. 저자는 민주적 혁명을 제안한다. 그 혁명은 기득권층의 성공으로부터 배울 때에 가능하다고 한다. 기득권에 맞설 설득력 있는 학문적 주장을 내세울 유능한 선동자들을 만들어내고 대항세력들을 조직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파한다. 아울러 인터넷과 SNS는 주류 언론의 지배를 깨뜨릴 희망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집단적 힘으로 사회정의를 성취하자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금수저’로 거론되는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실상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해선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고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박정태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