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요즘 배경 추리소설 왜 안쓰냐고요?

입력 2017-03-31 05:00
자신의 추리소설이 갖는 장점으로 가독성을 꼽는 정명섭 작가. 서영희 기자
대기업 샐러리맨과 바리스타 출신의 전업 추리소설가. 신간 ‘별세계 사건부: 조선총독부 토막살인’(시공사)을 낸 정명섭(44) 작가를 인터뷰한 건 작품도 흥미롭지만 흔치 않은 이력에 호기심이 발동한 측면도 있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작가는 “파주출판도시의 한 카페에서 9년간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일했다”며 “작가 편집자들을 자주 접하면서 창작 욕구가 생겨난 것 같다”고 회상했다. 2003년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솟구치는 충동에 카페 한 구석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이 탐독하던 역사 추리소설 장르를 쓰는 작가가 됐다. 2006년 첫 소설 ‘적폐’를 시작으로 ‘김옥균을 죽여라’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등을 썼다.

이번 소설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살인사건을 다룬다. 10여년의 공사 끝에 완공을 코앞에 둔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조선인 건축기수 이인도가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시신이 토막 난 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大)’ 자 형태로 곳곳에 흩뿌려진 것이다. 열흘 밖에 남지 않은 총독부 낙성식을 앞두고 일본 경찰은 사건을 쉬쉬한다. 시대일보 사장 최남선은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사에서 일하다 풍속잡지 ‘별세계’로 이직한 민완기자 류경호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부탁하는데…. 류경호가 탐정처럼 파헤치는 사건의 결말은 상식을 뒤엎는다.

여러 전작이 그랬듯 이 소설도 근대 문물이 들어온 일제 강점기가 배경이다. “요즘을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쓰기는 쉽지 않아요. 휴대폰 CCTV 등 일상이 감시당하는 시대잖아요. 탐정이 온전히 추리할 수 있는 시대로 날아가고 싶었어요.”

소설에는 시인이자 언론인 최남선 뿐 아니라 최초의 근대적 건축가 박길룡 등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만 존재했을 것 같았던 당시에 인구의 99%였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는지 보여주고 싶었지요.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건 현실감을 생생하게 살리기 위한 장치지요.”

소설에서 묘사되는 경성 시민들의 생활은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좁은 취업문을 돌파하기 위해 양복을 빌려 입고 나서는 청년들, 외상값을 갚지 않는 신사의 소매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인력거꾼…. 그들의 삶을 보는 건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그는 2006년 아내의 동의를 얻어 바리스타를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열정이 보답 받았는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크리에이터상을 받았다. 372쪽, 1만3800원.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