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특기생 학사관리 비리 만연… ‘제2의 장시호’ 700여명

입력 2017-03-29 17:45 수정 2017-03-29 18:14

국내 대학 입학 후 미국에서 프로선수로 뛰고 있는 A씨에게 중간·기말고사는 먼 나라 얘기였다. 대학에서 스타 대접을 해주는 덕택에 해외에서 돈 벌면서 편리한 대학 생활을 누렸다. 교수든 강사든 A씨가 출석하지 않아도, 시험을 보지 않아도,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아도 학점을 줬다.

체육특기생 B씨는 병원 진료사실확인서를 위조해 학점을 받았다. B씨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아는 담당 교수 외 교양 교수 등에게 허위 진료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예전에 받은 진료사실확인서의 진료 기간이나 입원 일수를 고치는 방법을 썼는데 대학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학점을 부여했다.

교육부는 ‘정유라·장시호 대학 입학·학사 특혜 파문’을 계기로 지난해 말 착수했던 체육특기생 학사관리 실태조사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 서울권 주요 대학들은 체육특기생을 사실상 방치했다.

해외 대학들은 학생 선수를 깐깐하게 가르친다. 선수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부상 등으로 선수생활을 접을 경우 등에 대비해 학업을 게을리 하지 못하게 한다. 스타 선수라도 예외가 아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바쁜 일정으로 학점을 따지 못해 미국 스탠퍼드대를 중퇴해야 했다. 미셸 위도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엔 공부하느라 경쟁자에게 밀렸지만 졸업 후 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국내 대학과 교수들은 ‘공짜’로 학점을 주고 졸업도 시켜줬다. 이번 조사에서 적발된 교수는 17개 대학에서 448명이었다. 특혜를 받은 학생은 726명이었다. 이 중 394명은 요건을 채우지 못했지만 졸업장을 땄다. 골프 선수 등 유명 프로 선수들도 여럿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적발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다<표 참조>.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으면 제적하도록 학칙이 돼 있지만 무사히 졸업한 학생이 394명이었다. 고려대가 2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 123명, 한양대 27명, 성균관대 8명 순이다. 교수 등이 시험이나 과제물을 대신 해주는 특혜를 입은 학생이 8명이었다. 군에 입대한 학생 선수의 기말고사 답안지가 적발되기도 했다. 부상으로 장기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았던 학생이 버젓이 출석한 것으로 돼 있기도 했다. 출석 일수가 부족하지만 교수들이 눈감아줘 학점을 받은 학생은 417명이나 적발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위반 정도가 심한 경우는 엄격히 처분한다. 적발된 대학에 입학 정원을 줄이는 제재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개인 소명과 이의제기 절차 등을 거쳐 처분 수위를 정하고, 5월쯤 체육특기자 학사관리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정유라씨에게 입학 및 학사 특혜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측이 “우리나라 체육특기생 학사관리 문제가 만연한데 이화여대 총장과 교수만 탓하는 것이 형평성 면에서 옳은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대학도 체육특기생 관리가 허술했는데 이화여대만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는 취지여서 빈축을 샀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