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선체조사위원회의 첫 만남은 울음과 고성으로 끝났다. 29일 조사위원들이 미수습자 수습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팽목항을 찾았다. 면담은 소득이 없었다. 조사위의 제한된 권한 때문이었다. 미수습자 가족은 “아이만 찾아 달라는데 이게 문제냐”고 호소했다.
조사위원들은 오후 1시35분 분향소에서 희생자를 조문한 뒤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났다. 비공개로 열린 면담에서 가족들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선체조사위에 전달했다. 미수습자 수습 방식을 가족과 사전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수습방식을 다음달 5일까지 제시한다는 요구였다. 미수습자 가족 중 1인과 조사위원 1인을 수습에 대한 유일한 창구로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합의문을 받은 선체조사위는 비공개 논의에 착수했다.
오후 4시에 시작된 2차 면담은 10분 만에 통곡소리와 함께 중단됐다. 단원고 허다윤 학생 어머니 박은미(47)씨는 탈진해 업혀 나오기도 했다. 가족들은 “사람이 있고 법이 있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양측의 면담이 난항을 겪은 이유는 가족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이 선체조사위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은 “가족 측이 수습안에 대해 사전 합의를 요구했는데 이는 법적으로 우리 권한 밖”이라며 “특별법상 해양수산부가 미수습자 수습을 집행하면 그것을 점검하는 것이 선체조사위의 권한”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조사위가 구성돼도 미수습자 가족에게는 상황이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오후 6시쯤 면담이 재개됐지만 15분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이날 오전만 해도 가족들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인양 상황을 보러 배에 오른 단원고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남경원(48)씨는 높은 파도 탓에 세월호를 2.4㎞ 앞두고 뱃머리를 돌려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그는 “3년을 기다렸는데 며칠 못 기다리겠냐”며 “아이를 찾는다면 100년도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오른 23일부터 일주일간 미수습자 가족은 희망과 절망을 수시로 오갔다.
잔뜩 녹이 슨 선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3일 팽목항은 오열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073일 만에야 마주하게 된 배의 참담한 모습에 목 놓아 울었다. 이제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에 쏟아진 눈물이기도 했다.
소조기 마지막 날인 24일은 긴장했다. 물결이 잔잔한 이날까지 세월호를 목표지점까지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10분 세월호가 수면 위 13m까지 올라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반인 미수습자 권재근·혁규 부자의 가족 권오복(62)씨는 “해수부 발표가 가족을 들었다 놓고 있다”고 말했다.
25일은 램프 절단 등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월호 인양작업의 분수령인 선적작업이 완료된 걸 확인하고서야 다소 마음을 놓았다. 단원고 조은화 학생 어머니 이금희씨는 “가족의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고 기도해 준 국민들께 감사하다”며 “목포신항으로 세월호가 이동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28일 유해 발견 소동에 가족들도 마음고생을 했다. 오후 3시30분쯤 속보로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밤 국과수 감식 결과 유골이 동물 뼈로 드러나 우려와 기대감은 허탈감으로 바뀌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가족들이 수십번씩 간이 붙었다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진도=임주언 신재희 이현우 기자 eon@kmib.co.kr
세월호 인양 일주일… “아이 찾아달라는데 법이 문제냐” 울분
입력 2017-03-29 17:52 수정 2017-03-29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