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수 정당, 가치 통합 여건부터 갖춰라

입력 2017-03-29 17:32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영입된 지 99일 만이다. 오는 31일 선출 예정인 대선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측면에서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인 위원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몰 직전까지 몰렸던 새누리당을 당명 개정 및 기간조직 재정비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케했다. 탈당 세력의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한국당을 안정시킨 점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

거기까지였다. 인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당을 쇄신하겠다”며 친박계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예고했었다. 이정현 전 대표와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이 탈당하고, 서청원·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각각 당원권 정지 3년과 1년의 징계를 받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친박계 인사들이 여전히 당내에 머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김진태 의원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무공천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 국회의원 재선거에 친박 핵심 인사를 후보로 결정했다. 탄핵까지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아무런 징계도 하지 못했다. 소속 의원 80여명은 박 전 대통령 불구속 수사 청원서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친박계의 위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대로 인 위원장의 친박 인적 청산 작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여전히 ‘한국당=친박당’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부패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박근혜식 보수는 이미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했다. 보수 정당들은 이제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 확고한 안보관, 포퓰리즘이 아닌 진정으로 국가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경제관, 약자와 소외계층까지 보듬을 수 있는 국민통합 사회관은 보수 가치의 기본이다. 이를 시대 변화에 걸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길 잃은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보수 가치 마련이 급선무다. 이 같은 원칙을 공통 가치로 해서 보수 후보 단일화든 당 대 당 통합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이를 담을 그릇이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친박계를 그릇에서 분리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소한 탄핵 불복 세력인 ‘삼박’(삼성동 친박)에 대한 상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보수는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다. 명분 있는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보수의 재건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친박계 스스로 뒤로 물러나는 게 도리다. 건강한 보수 세력이 재건돼야만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도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